햇살이 먼저 와서 앉은 벤치에 햇살과 같이 앉아 길게 뻗은 철길을 본다. 나란한 철길은 아직 조용하다. 그런 정적 속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가 들어올 곳으로 반쯤 몸을 돌린 채 마음은 기차를 맞으러 저만치 나가있다. 멋진 저녁이 다가올 듯한 예감 같은 것이 온 몸을 감싸 안는다.
이 시의 제목을 읽고 나면 나는 매번 저 풍경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배낭 여행자의 모습으로 작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처(定處)가 없다면 더 좋을 것이고, 이틀이나 사흘쯤 기차에 실려서 기차가 덜컹거리는 대로 마음도 덜컹거리며 모르는 마을들을 지나가는 상상을 한다. 바람이 불어가고 구름이 지나가고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나도 부유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천천히 멀어져 낯설어지는 시간이 내가 애타게 찾는 위로라는 생각을 하며 시 속의 풍경에 스며드는 것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기차가 들어왔다가 금방 떠나간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누구도 기차를 타지 않아도 기차는 멈추고 또 길을 간다. 얼마나 많은 기차역을 지나왔던 간에 기차는 또 지나간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기차역처럼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머물기도 지나치기도 쉽지 않은 마음을 추스르며 매일 오늘의 역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희망과 원망 사이를 지나가며 무엇도 제대로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또 기차를 기다린다. 오늘 내 생에 시동을 걸고 덜컹거려줄 기차를 기다리며 어느 기차역에서 만날지도 모를 사람과 운명과 사랑을 생각한다. 어떤 간절함 끝에도 스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우며 기차를 기다린다. 다음 기차는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