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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26. 2018

꿈과 행복에 대하여

왜 나는 소설을 쓰는가

아무래도 꿈과 행복은 다른 영역의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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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열망한 것이라곤 소설가가 되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에는 빅토르 위고에 영감을 받아 일기장에 정말 이렇게 썼다. 소설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 목표를 향해 가는 나날들이 힘겨웠고 그 끝에 비로소 행복이 있을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소설을 출판을 했다. 책이 손에 쥐여졌다. 책들이 세상 속으로, 독자 곁으로 떠나갔다. 과연 행복했나 자문해본다. 몇 독자들에게 받은 달콤한 찬사와 감당하기 힘든 격려의 말들. 그것은 어느덧 내성이 생겨 점점 무감각해져버린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달콤한 것들을 너무 여러 번 되새김질했던 것일까.


과연 이것이 내가 바라던 꿈이었을까. 그래서 꿈꾸던 소설가가 된 것일까. 그래서 행복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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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꿈으로, 직업으로 삼아라.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격언이었다.


사실 내겐 글쓰기에 재미란 눈곱만치도 없었다. 달콤한 유혹들을 거절해야만 한다. 누워서 티브이를 볼 수도, 화기애애한 술자리에 나갈 수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선택지를 포기한 채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쓴다. 그 끝에 행복이 있을 거라 착각하며.


하지만 일차적 목표 끝에 목적지에 행복이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나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뿐, 그것이 전부였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소한 시간, 따스한 햇살 아래 어느 여유로운 일요일. 행복은 그런 것들에 깃들여있었다.


요즘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책을 읽어본 거래처 분이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썼냐고, 내게 물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면 다 그렇게 쓰게 되겠지. 곁에 있던 분이 확신하듯 말했다. 단언컨대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재미없다. 쓸 때 행복하지도 않다.


내게 행복한 것은 따로 있다. 글을 쓸 때보다 무작정 여행을 떠날 때, 구찌 신발을 샀을 때,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멋진 공연을 보았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 때 더 행복했다. 그리고 알고 있다. 나는 속물적이어서 차를 파나메라로 바꾸거나, 발망 코트나 구찌 토트백을 사거나,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여행을 가면 아주 행복할 것이라는걸. 정말 온몸으로 행복을 느낄 것이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글쓰기는 결코 행복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일을 하다가도,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계속해서 쓰고 싶은, 써야 할 것들이 떠오른다. 이내 나는 자발적 노예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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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게 있어 소설을 쓰는 건 아무래도 행복이 아닌 의무감, 사명감, 만족감, 자족감, 카타르시스, 그리고 희열에 가까운 무언가다. 지독할 만큼 지루하고 때로는 괴로운데도 못 해먹겠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아무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걸, 쓰라린 낙방 혹은 가혹한 비평으로 흠씬 두들겨 맞을 걸 예감하면서도 하게 된다. 어쩌면 변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음에도 소설을 쓰는 것이다. 하루빨리 레지스탕스를 극복할 수 있는, 동경하는 작가들에 손끝만큼이라도 닿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정말 그뿐이다. 그래서 쓰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다. ‘소설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


아무래도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다.



아무래도 꿈과 행복은 다른 영역의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leewoo,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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