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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31. 2018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내는 것일까.

우리 시대의 미덕이 하나 있다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성실하게 배워왔다. 일찍 자기. 일찍 일어나기. 억지 미소 짓기. 복종하기. 유행 좇기. 남들하고 사는 만큼 하고 살기.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 배우고 또 익혀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평범해지기 위해. 하루를 완수해내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하루를 살아내는가를 배워왔지는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른들은 시계가 그려진 종이를 건네주곤 피자를 자르듯 시간을 쪼개라고 했다. 자는 시간. 기상 시간. 학교 가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숙제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학원 가는 시간. 복습하는 시간. 그리고 꿈나라. 사랑과 우정, 그리고 행복을 위한 시간은 최대한 줄여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그렇게 살면 칭찬을 받는다! 그들은 말한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그게 삶아야.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시계를 보면 자연스레 쪼개기부터 한다. 그리고 시계를 바라보며 조마조마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서둘러야겠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방법만을 배워왔던 것이 아닐까. 왜 살아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잘 길들여졌기에 오늘도 그렇게 살아내는 것뿐이다. 그렇다. ‘살아내는 것’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곤 텅 빈 방 안에 돌아와 창밖을 내다보며 되뇌어보자. “오늘도 하루를 살았구나.” 무언가 어감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뇌어보자. “오늘도 하루를 살아냈구나.” 입에 착착 감긴다. ‘해야 한다’는 의무 목록 속에서 보낸 하루. 우리는 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낸다’가 아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꿈을 꾸는 것. 희망을 갖는 것. 사랑을 하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누군가를 손잡아주는 것. 활짝 미소 짓는 것. 눈물을 흘리는 것. 감동하는 것.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 경이를 느끼는 것.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는 언제나 늘 뒷전이었다. 살아내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길 욕망하고 있다.

벌써 자정이다. 나는 잠들지 못한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곤,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 책상 앞에 앉아 살아보려 발버둥 쳐보는 것이다. 허나 너무 늦었다. 피로가 밀려온다. ‘해야 한다’는 의무 목록을 하나씩 지우느라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하고 싶다’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최대한 책상 앞에서 버텨보는 것이다.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눈을 뜨면 또다시 살아내야 하는 하루가 시작되겠지. 그리고 나는 또다시 살아가기를 꿈꾸겠지. 


나는 하루를 살아낸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다. ©leewoo,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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