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은 핍을 그리워한다

세상 어딘가에 잃어버린 그날의 나 자신에 대하여

by 이우


허먼 멜빌의 소설『모비딕』 속 전설의 고래 모비딕을 찾아 떠나는 포경선 피쿼드 호에는 꼬마 선원이 한 명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핍. 어느 날 항해 도중 핍은 바다에 빠지고 만다. 선원들은 그가 없어진 걸 뒤늦게야 알아챘다. 배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수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둘러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망망대해 위에서 홀로 표류한 것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다행스럽게도 핍은 구출된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명랑하던 핍이 아니었다. 그는 텅 빈 존재가 되고 말았다.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멜빌은 이렇게 묘사한다. “바다는 조롱하듯 유한한 육체만을 물 위에 띄우고 무한한 영혼은 물속에 빠뜨렸다.” 핍은 갑판 위로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은 속이 비어버린 껍데기뿐이었다.


이따금씩, 나는 나 역시 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꿈 많던, 포부에 가득 차 있던, 혈기왕성하던, 결코 지치지 않던 나의 일부는 지난날 홀로 낯선 세계를 표류하던 그 순간을 여전히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따라, 호기심을 좇아, 친구를 찾아, 사랑에 이끌려.


어쩌면 홀로 남겨진 새벽, 문득 마주하는 공허함은 망망대해의 마력에 홀려버려 그곳으로 침잠해버린 나의 조각들의 부재 때문은 아닐는지.


핍은 지금 여기에도, 그때 그곳에도 존재한다. 핍은 점점 조각나 부서져 간다. 핍은 핍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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