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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23. 2018

따스한 고독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바라던 고독은 없었지만

순례를 꿈꾸며 가장 기대했던 것은 고독이었다. 종종 침대에 누워 아직 가보지 못한 순례길을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 수평선 저 너머까지 뻗은 오솔길. 길 위에는 오직 나밖에 없다. 마치 낯선 행성이나 다름없는 곳에 홀로 남겨진 나는 이제 모험을 하듯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서 고독하게 걷는 것이다. 그동안 몸 담고 있던 세상과 인간관계로부터 동떨어져 홀로 걷고 있는 그 고독이 너무나 낭만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런 낭만적인 고독과 함께라면 원하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꿈꾸었던 낭만적인 고독, 사실 그것은 절대적인 고독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고독은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순례길은 성 야고보의 유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안치된 이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순례자가 지나간 길이다. 지금 이 순간도 순례자들은 분명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순례길은 모든 순례자를 위한 곳이지, 결코 특별한 순례자, 즉 나를 위한 길이 아니다. 그 사실을 순례길에 와서야 깨달았다. 


길 위에 나선 첫날부터 많은 순례자와 마주했다. 한번 만났던 순례자는 길 위에서 또 만나게 된다. 걷는 속도가 제 각각인지라 서로 앞서가고 뒤쳐지며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마법의 주문 ‘부엔 카미노’로 시작해 점점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무얼 찾고 있는지.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워졌다고 해서 계속 함께 걷지 않는다. 잠시 보폭을 맞췄던 것뿐, 다시금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비록 순례길에는 절대적인 고독은 없었지만, 기대했던 것과 비슷한 고독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바로 함께 걷던 순례 자와 보폭이 달라지는 그 순간부터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는 저 앞에서, 혹은 저 뒤에서 묵묵히 걷고 있다. 바로 지금부터 그동안 꿈꾸었던 고독을 맛보게 된다. 말없이 걷는 나는 점점 나 자신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간다. 생각이 실타래처럼 이어진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일까. 왜 그런 말로 누군가에게 괜한 상처를 줬던 것일까.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울고 웃는다. 그리고 그 의미를 곱씹는다. 원하던 고독은 아니었지만, 원하던 고독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고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저 멀리서 저벅저벅 친구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것 좀 먹어.”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오늘은 우리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친구와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여기 오기 전에 너는 뭘 했어?” “소설을 쓴다고? 무슨 소설을 쓰는데?” 때로는 홀로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제는 고독이 아닌 친구와 함께 걷는다. 


순례자 친구와 함께 걷다가도 고독은 다시금 찾아왔다. 함께 걷는다고 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나란히 걷는다. 우리는 각자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다. 함께 고독을 걷는 것이다. 사실 막연하게 꿈꾸었던 절대 고독은 순례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콘크리트로 구획된 현대식 주거 공간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이웃과의 인사도 불편해하는 ‘단절’에 특화된 공간 말이다. 이러한 절대 고독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고독의 말로는 우울과 독선, 광기 혹은 고독사뿐이니까. 


때문에 순례길 위에서 잠시 동안 마주하는 고독이야말로 낭만적이며 안전한 고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친구는 내가 고독 속으로 깊이 침잠했을 때면 언제나 시의 적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미소를 건넸다. 그들의 온기 덕분에 생각의 실타래와 과거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 금세 빠져나와 순례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함께 걷는 친 구는 고독과 현실 세계,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렇다. 순례길 위에는 분명 고독이 있었다. 다만 내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고독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고독이었을 뿐.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순례길에는 제법 견딜 만한 ‘따스한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고.




순례길에는 제법 견딜 만한 ‘따스한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 ©2015, leewoo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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