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은사여!

낯선 세상에서 스승을 만나다

by 이우

흔히 은사(恩師)라고 하면 학창 시절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준 선생님들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내게도 그런 스승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은사라 부를만한 스승들이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오만에 가득 차 있었던 까닭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잘나고 옳은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라 여겼던 것이다. 때문에 스승은 가르칠 것이 많았지만, 나는 배울 것이 없었다. 스승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물한 살,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부모님의 품에서,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보고 자란 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치 난생처음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와 같았다. 매 순간이 경이와 다름없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버렸다. 그동안 세상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세상에는 배울 게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스승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불성실한 학생은 졸업을 하고 말았다. 스승들은 모두 떠나가고 말았다. 배울 게 많은 세상에서 나는 무얼 배워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뮌헨을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너도 혼자 여행 온 거야?” 그는 자신을 호드리고라고 소개했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그는 수줍음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나와는 달리 활기가 넘쳤고 유쾌했다.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 때문인지,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그와 잠시 동행하기로 했다.


구 시청사를 구경하고 이자르강이 흐르는 영국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거대한 숲이라고 불러도 무색할 정도로 크고 아름다웠다. 그와 함께 학생들의 틈에 끼어 잠시 축구도 했고, 맑은 강물에서 노니는 오리와 거위들도 구경했다. 왜 홀로 여행을 떠나왔는지, 여행에 오기 전까지 무얼 했는지 서로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침 정원 저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를 따라 가보니 정원 한가운데 카페테리아가 나타났다. 우리는 큼지막한 독일식 햄과 맥주를 시켰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은 추가로 1유로를 내야 한다고 했다. 추가금은 1,000cc의 맥주잔에 대한 보증금이라는 것이었다. 의아했지만 맥주를 다 마시고 잔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준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을 마치곤 자리에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는 테이블에 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런 햄과 커다란 맥주를 가져왔다. 우리는 건배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허기진 배도 채웠을뿐더러 따스하고도 보드라운 가을 햇살 아래서 맥주의 취기가 살살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독일인들은 참 멍청하다니까.” “왜 갑자기?” “난 이 맥주잔을 기념품으로 챙겨갈 거야!”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보증금까지 냈잖아.”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내가 어제 기념품 가게에 가봤는데 이 잔은 족히 20유로는 내야 살 수 있더라고. 그런데 이미 보증금을 냈으니, 분실에 대한 보상은 이미 한 셈이잖아. 이제 이 잔을 가져가도 상관없는 거라고.” 그는 남아있던 맥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곤 빈 잔을 가방에 넣었다.


충격을 받고 말았다. 또다시 경이를 느꼈다. 멋있다. 세상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그의 사고방식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처럼 세상을 다르게 보고 싶었다.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하고 싶었다. 스물한 살의 나를 매료시킨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신선한 것들이었다. 내게도 진정한 스승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따라 맥주잔을 가방에 챙기지는 않았다. 잔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날 내가 맥주잔 대신 가방에 넣었던 것은 스승으로부터의 가르침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기념품을 버리지 못했다. 실로 값진 가르침이었기에. 아니, 내가 배운 유일한 가르침이었기에. 스승은 내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세상이 곧 학교요, 그곳에는 스승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십 년의 세월 동안 홀로 낯선 세상을 방황해왔다. 세상으로부터 배우고 싶어서, 참된 스승들을 만나고 싶어서, 귀중한 가르침을 얻고 싶어서. 혹시 누군가 내게 은사가 누구냐고 묻는 다면, 나는 서슴없이 호드리고라고 답할 것이다.


나의 은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세상 어딘가에서 그때와 같은 강의를 하며 기념품들을 수집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은팔찌를 차고 강단에서 내려왔을지도. 그렇다면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지금의 나는... 오, 나의 은사여! 하지만 어째서 저는 여전히 어리석고, 세상에는 배울 것들이 많단 말입니까. 오, 나의 은사여! 저는 아직도 이 학교라는 곳을 졸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 나의 스승이여, 저는 아직도. ©leewo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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