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온 순례길 위에서 가족을 얻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연은 순례의 첫날부터 이어져있었다. 새벽녘, 생장 피드 포르를 떠나 오 킬로미터 정도쯤 걸었을까, 어느새 아침 햇살이 따스히 비쳐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녹음은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새들마저 감미롭게 지저귀는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녹초가 되어 있었다. 첫날의 코스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배도 고팠고, 적당한 쉼터를 찾고 싶었다. 그때 산 중턱에 카페가 보였다.
카페 문을 열었다. 커피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땀에 젖어 녹초가 된 채로 고개를 푹 숙인 검은 머리의 여인.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인이시죠?”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맞아요.” 자연스러운 합석. 주인은 그녀와 함께 앉은 테이블로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땀에 젖은 몰골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바로 한 달 뒤 산티아고에 함께 도착하게 되는 소영이었다.
홀로 시작했던 순례길이었지만, 카페를 벗어나면서부터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녀와 여섯 살 차이가 났지만 이상하게도 대화가 잘 통했다. 늦깎이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번으로 치면 그녀와 동기였다.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주위의 의구심을 무릅쓰고 순례길에 올랐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우리는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대학생활부터 이성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집필 중인 소설이 담긴 노트북을 짊어지고 걷는다며 내밀한 꿈까지 털어놓았다.
그녀와 자연스럽게 동행한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걷는 내내 한국음식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고추장을 챙겨 왔다고 했다. 나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재료를 사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 테니 거기에 비벼 먹자고 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날 여정을 푼 곳은 시주르 미노르Cizur Minor였다. 알베르게에는 그동안 길 위에서 마주쳤던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아직은 소영이만큼은 친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저녁 식탁에 초대했다.
소영이와 함께 완성한 요리를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순례자들이 둘러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제시, 파리지앵 마이테나,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루시아, 마더 테레사 마리나, 노르웨이에서 온 애니카, 바르셀로나에서 온 누리아와 바스 아주머니. 그들 앞에 요리를 선보였 다. 베이컨, 양파, 감자, 당근, 파프리카, 베이컨으로 만든 족 보 없는 볶음밥이었다.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어야 이게 진 짜 한국의 맛이라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함께 나눈 음식 때문일까, 우리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볶음밥에 와인을 기울이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서로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서로의 와인잔을 채워주었다. 갑자기 루시아가 식탁을 두 번 두드리더니 좌중을 향해 말했다. “주목! 우리 중에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누리아가 우리 모두를 바르셀로나로 초대하겠대!” 우리는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모두들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사실 누리아와 바스는 이미 산티아고 순례를 한 번 마친 경험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들도 처음인 것처럼 초심자의 환상에 환상을 더했다. 그녀들은 나중에 일정상 순례를 그만두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제야 이미 산티아고를 밟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어쩌면 산티아고의 환상에 잔뜩 가슴 부풀어 있는 우리의 순수한 감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산티아고를 꿈꾸던 우리 사이에 끈끈한 유대가 생겨났다.
넷째 날 여정을 푼 곳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였다. 우리는 약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정원을 갖춘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빨래를 널고, 스트레칭과 요가로 몸을 풀고, 잔디밭에 옹기종기 앉아 맥주를 마셨다. 한편에서는 간이 병동이 열렸다. 의사는 바스였다. 다들 환자였다. 그녀는 모두가 갖고 있는 물집을 바늘과 실 그리고 소독약으로 손수 치료해주었다. 환자가 바뀔 때마다 비명이 들려왔다. 즐거운 비명은 이내 웃음으로 전염되어 퍼져 나갔다.
오랜만에 나무 그늘에 누워 친구들과 여유를 부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당의 종루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산들바람에 젖은 빨래가 살랑거렸다. 문득 이걸 두고 행복이라고 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바스와 누리아 가 우리를 불렀다. 지난번 한국 요리를 먹었으니, 오늘은 스페인 요리를 선보인다며 진수성찬을 차린 것이었다. 식탁에 는 신선함이 가득 담긴 스페인식 샐러드, 토마트를 으깨 얇게 펴 바른 바게트, 전통 스페인식 햄인 하몬과 순대와 비슷 한 초리조, 그리고 스페인산 레드와인이 곁들여져 있었다.
식탁에서 누군가 말했다. 지금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가족이라고. 그것도 그냥 가족이 아니라 ‘물집 가족’이라고 했다. 확인해보니 모두들 발바닥에 물집을 치료한 흔적인 실매듭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고, 모두 고 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순례길에서 만났고, 스페인의 대지 위에 있었던 만큼, ‘우리’의 명칭을 스페인어로 ‘물집 가족’을 뜻하는 ‘암포야스파밀리아Ampollas Familla’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가족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허나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의 짐을 짊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자의 짐과 각자의 길이 있었다. 이른 새벽 함께 순례길 위에 섰지만, 제각기 다른 속도로 나아갔다. 홀로 걷다 보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일쑤였던 나는, 모두를 앞서 갔지만 언제나 그들보다 늦게 도착하곤 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었다. 같이 걷는 것 못지않게 홀로 걷는 고독의 시간을 즐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지에 도착해 알베르게의 문을 열면 마음이 포근했다. 그곳에는 따스한 집처럼 가족들이 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