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인삿말 부엔 카미노
낯선 인삿말이 들려왔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어느 낯선 순례자가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무슨 소린가 싶었 는데 그뒤로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른 순례자들은 물론이고 강아지와 함께 마을 어귀를 산책하던 아주머니도, 마당 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할아버지도, 말을 타고 여행하던 중년의 부부도, 속도를 줄이며 지나치는 자동차의 운전자도, 식당과 카페의 주인도 이방의 순례자와 마주칠 때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부엔 카미노.”
어느새 새로운 인사법이 익숙해졌다. 언어라는 것은 아 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듣고 말하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그 의미에 흠뻑 젖고 마는 것이다. 가령 군인의 인사법은 거수 경례와 함께 ‘충성’이라고 외치 는 것이다. 이 인사법을 고안해낸 사람은 언어의 힘을 알고 있는 심리학자가 아니었을까. 군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충성을 외치며 정말 상관의 명령에 충성하는 그런 군인이 되어간다. 이처럼 분명 부엔 카미노에도 어떤 힘이 있었다.
부엔 카미노는 직역하면 ‘좋은 길’이란 뜻이며 통상 ‘좋은 여정 되세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모두가 좋은 길을 이야기하며 의미 있는 순례길이 되길 바랐다. 인삿말 하나 때문에 점점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순례자는 길 위에서도 본연의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케케묵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하지만 마법의 주문처럼 부엔 카미노는 이방인을 점점 순례자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저 머나먼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걷는 존재, 순례자 말이다.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