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에 대하여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어깨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구 킬로그램의 배낭. 왜 이리 무거운 것일까. 순례를 준비함에 있어 정말이지 유일하게 심혈 기울인 것이 바로 짐을 꾸리 는 것이었다. 어떤 소설책을 챙길까,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장비를 챙길까. 필요한 것들을 방 한구석에 주욱 늘어놨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줄이고 또 줄였다. 입맛을 다시며 체념하고 또 체념했다. 마침내 배낭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짐들만 꾸역꾸역 삼키곤 입 을 굳게 다물었다.
배낭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 노트북, DSLR 카메라, 소설책, 일기장, 메모장, 침낭, 등산스틱, 등산 재킷과 여벌 옷, 속옷, 화장품, 슬리퍼.... 노트북은 충전기까지 삼 킬로그 램에 달했고, 아마추어용 카메라는 렌즈와 충전기까지 합치 면 일 킬로그램을 족히 넘었다. 두꺼운 소설책과 그동안 써 오던 일기장, 메모장과 필기구도 합치면 일 킬로그램이 넘 었다. 그리고 옷가지와 잡동사니들, 그리고 순수 배낭의 무 게를 합치면 대략 사 킬로그램이 되었다. 도합 구 킬로그램의 무게가 어깨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짊어진 짐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을 집필하겠다던 열망을 담은 노트북, 이제는 순간을 기억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카메라, 활자중독증에 걸려 없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기에 챙긴 소설책.... 그뿐만이 아니었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잊을 수 없는 상처, 늘어만 가는 부끄러움, 갚지 못한 마음의 빚,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오래된 짐들 사이에 이끼처럼 끼어 있었다. 말하자면 배낭의 짐은 삶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구 하고 싶어 찾아온 순례길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앞으로도 그러할, 쉽게 바뀌지 않을 존재일 뿐이었다. 삶 자체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무거워도 어쩔 수 없었다. 짊어지고 저 멀리 산티아고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