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나의 템포를 찾다
길 위에서 가족을 얻게 된 건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혼자인 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 미이기도 했다. 함께 무리 지어 다니다 보니 무언가 중요한 의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홀로 길 떠나온 굳은 결심이 무뎌졌다고나 할까. 멍청해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날은 목 적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새벽 일찍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고, 무작정 걷다가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반기는 곳에서 여정을 풀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걸었건만, 개운치 않았다. 그저 정해진 틀 속에서 걸은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었다. 이따금씩 길 위에서 마주한 카페에서, 어느 아름다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그네처럼 여유를 부리 며 쉬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저 멀리 나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뒤쳐지는 것만 같았다. 불편한 마음을 참지 못한 나는 친구들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데 과반수 이상이 파스타를 먹고 싶다 고 하면 다수에 따라야 했다. 무엇보다 쓰고 있던 소설을 구 상하는 고독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홀로 무언가를 갈구하기 위해 오른 순례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암포야스 파밀리아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생겼다. 그곳에는 불문율이 되어버린 의무와 규칙이 있었다. 어딘가 익숙했다. 지난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의 손길에 침대에서 눈을 뜨고, 수업 종소리에 맞춰 책상에 앉아 선생 님을 기다린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급식실로 뛰어가 밥을 먹는다. 그리고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제껏 의무와 규칙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했다. 알람 소리에 맞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직장으로 향해야 했다.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수화기가 울리면 받아 들고 예의 바르게 연극을 해야 했다. 시키는 일을 군소리 없이 해야 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해 질 녘이 되면 서둘러하던 일을 마무리 짓 고 집으로 향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에 수없이 나를 맞추었다. 별 의심도 없이 말이다. 스무 살은 그러해야 해. 남자는 그러해야 해.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고, 철이 드는 거야.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나 보고 싶어 순례길이었다. 더 이 상 의무와 규칙 속에서 바보처럼 걷고 싶지 않았다. 단 하루 만이라도 온전한 나의 의지만으로 지도를 보고, 이정표를 찾고, 먹는 것부터 앉아 쉬는 것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며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철저한 혼자가 되긴 싫었다. 그저 먼 저 도착해 친구들을 따스히 반기고 싶었다. 어두운 새벽, 친 구들보다 삼십 분 일찍 일어나 서둘러 길을 나섰다. 여정도 미리 체크했다. 에스텔라Estella부터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까 지. 어스름 속에 잠긴 순례길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아침으로 크루아상과 카페라테를 시켜놓고 수첩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여유롭게 적어나가기도 했고, 바위에 걸터앉아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을 감상하기도 했다. 여유를 부리다 보니 뒤늦게 출발했던 소영이와 만나게 되었다. 잠 시 함께 걸었지만, 나는 애초 계획했던 대로 빠르게 치고 나 갔다.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그런데 길이 점점 험해졌다. 가 파른 길이 이어졌다. 이게 순례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경사 가 진 길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높이 솟은 바위산 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난데없는 등 산을 감행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네 발로 기어가듯 산을 오르고 있었다. 순례길에 기어가는 구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몇 번이고 미끄러졌고, 돌멩이와 나뭇가지에 수 차례 긁혔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게 순례자를 위한 길이라고? 언젠가 일흔이 넘는 노인들도 순례를 완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이 었었다. 그건 순전히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순례길을 묵묵히 걷는 길이었지, 네 발로 걷는 고행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뒤따라오는 소영이가 걱정되었다. 그녀가 이 험난한 길을 제대로 오를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 허한 메아리뿐. 두려웠다. 실종된 순례자들을 찾기 위해 순례길 상공에 구조 헬기가 떠서 수색 작업을 벌이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소영이가 굴러 떨어져 바위틈에서 신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조차 조난되면 정말 큰일이 다. 반드시 이 산을 넘어 소영이를 구하러 오리라. 이를 악물 고 바위산을 올랐다.
마침내 산 정상에 올랐다. 내려다본 광경은 장관이었지 만,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내려가는 길도 위험천만했다. 내려갈 때는 반쯤 주저앉아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네 발로 가야만 했다. 행여나 굴러 떨어질까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흙을 움켜잡으며 말이다. 기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소영이가 이 길을 지날 것이란 생각에 나뭇가지를 모아 틈틈이 이정표를 만들어두기까지 했다. 산에 올라온 뒤로 이정표를 보지 못한 지 오래였던 것이다. 소영이가 이거라도 보고 따라와야 할 텐데....
너무 힘겹고 무서워서 눈물까지 흐를 지경이었다. 공포 속에서 얼마나 내려갔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팝송이 들려왔다. 기쁜 마음에 나뭇잎을 헤치며 노랫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고행의 숲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나는 풀숲을 해치곤 길 위에 우뚝 섰다. 기쁜 마음에 안도의 함성을 내질렀다. 노래를 틀고 가볍게 조깅을 하던 여인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에 흙을 뒤집어쓴 사내가 숲 속에서 튀어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아니, 여기에서 내려오는 길이에요?” 그녀는 이곳은 순례길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하산한 산도 사람이 오르내리는 산이 아니라고 했 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었던 것이었고, 엉뚱하게도 가파른 바위산을 홀로 정복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허 탈해하는 내게 순례길로 복귀하는 길을 다시 알려주었다. 그 길의 끝에 나타난 곳은 소영이와 잠시 걸었던 길이었다. 무려 세 시간이 지나 있었건만, 결국 제자리였다. 친구들은 모두 길을 지나간 지 오래였다. 나는 애초 의도했던 대로 또다시 홀로 길을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친구들과 마주 했다. 그들은 나의 초췌해진 몰골을 보곤 놀라 몸을 일으켰다. 모두 샤워를 마친 뽀얀 얼굴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르짖었던 소영이도 그곳에 있었다. “아니, 나는 오빠가 다음 마 을까지 간 줄 알았어요.” 나는 배낭을 털썩 내려놓으며 그들 에게 바위산을 정복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게 했던 공포와 두려움도 친구들 앞에서는 그저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의 짧은 방황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자칫 잘못하다간 목숨마저 잃을 것 같던, 절체절명의 순간과 마주한 것만 같았던 방황은 한낮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학창 시절 야간 자율학습에서 몰래 도망처 집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던 어느 저녁도, 단 하룻밤의 에피소드로 끝났던 열아홉 살의 가출도, 일찍이 대학교를 자퇴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나의 스무 살도, 모두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내겐 너무나 진지하고 중대했던 모든 것들은 언제나 그랬다.
또다시 들려오는 웃음소리. 친구들의 웃음 속에 둘러싸였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비록 길은 잃었지만, 계획대로 온전하게 나만의 의지로 길을 걸었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뿌듯함까지 느끼며 오랜만에 먹고 싶은 저녁 메뉴를 골라 맛있게 해치웠다. 그날의 사건은 나의 마음 한구석에 어떤 상징적인 의지로 남아 앞으로의 순례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낮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길이라도 온전한 나만의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이다.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