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서 낯선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세상은 다양한 명목으로 우리에게 징세를 한다. 소득세, 양도세, 전기세, 수도세... 심지어 물건을 살 때도 세금이 이미 매겨져 있다. 납세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입법자 솔론은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은 그물과도 같아 그물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이렇게 납세의 의무라는 그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사전적으로 탈세라고 한다. 사람들은 온갖 편법들로 탈세를 궁리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여기, 탈세를 해도 불법이 아닌 세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호구세(虎口稅)이다.
용어 설명이 우선이겠다. 호구는 한자 풀이를 하자면 호랑이의 입이란 뜻이지만, 사전적 정의로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전자보단 후자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그리고 일상 언어로 쓰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호구. 그래도 좋게 보자면 순박하고, 이타적이며,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땐 세상 물정도 모르고, 주관도 없으며, 손해만 보는 사람이다. 세상은 이러한 호구에게 세금을 징수한다. 호구니까 내야만 하는 것이다.
흔히들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맞았을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한다. "아, 호구 잡혔네." 하지만 누군들 호구가 되고 싶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피치 못하게 호구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낯선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이다. 난생처음 어느 낯선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네들과 인종도,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 풍습도, 도덕도, 관습도 모른다. 처음 맞닥뜨리는 그네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 세상 물정 모르는 호구가 된 것이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산지 육 개월 정도 되었던 때였다. 기차로 여섯 시간 정도를 달려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같은 국가 내에서의 여행이었고, 수도에서의 거주 경험 때문에 여정에는 자신마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적인 수도 라바트는 잘 구획 지어지고, 잘 정돈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다면, 마라케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무척이나 번잡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마치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년처럼 역동적인 도시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호텔로 향해야 했다. 택시를 잡았다. 운전기사들은 타라고 하는 대신 목적지를 묻는다. 그리고 가격을 제시한다. 300디르함! 500디르함!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모로코 택시의 기본요금은 2디르함(대략 230원)으로 10km, 혹은 20분을 내리 달려도 20디르함(대략 2,300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비싸다고, 미터기를 켜자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저리 꺼지라는 손을 내저으며 냉정하게 떠난다. 몇 십분 동안 택시를 잡아보았지만 미터기를 켜는 택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흥정 끝에 100디르함에 합의를 보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목적지인 메디나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호텔을 찾아가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메디나는 마라케시의 구 시가지로 차가 지나갈 수 없는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호텔은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도를 보고 두리번거리며 찾아갔지만, 나는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숙하게 헤매는 내게 자전거를 탄 현지인 사내가 접근했다. “어딜 찾는 거야?” “여기 호텔에 가려고.” 나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갑자기 호의를 건네는 사내. 가던 길을 멈추고 갑자기 내게 도움을 준다고? 뭔가 의심스러운데. 그를 경계했다.
“어디 가던 길 아니었어?”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내가 말했지만, 그는 다 썩은 이를 다 드러내며 괜찮다고 씨익 웃어 보였다. 여행자를 돕는 것이 신의 뜻이며, 자신의 행복이라고까지 했다. 따스한 호의를 건네는 그를 믿기로 했다. 그를 따라 오 분을 걸었을까, 어느새 호텔 앞에 도착했다. “정말 고마워.” 내가 말했다. “500디르함이야.” 그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응?” “길 안내해줬으니 500디르함이라고.”그는 윽박까지 지르며 돈을 내노라고 했다. 인적 없는 골목이어서 겁이 났지만 터무니없는 금액은 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나갔다.
호텔 앞에서 시끄러운 실랑이가 벌어지자 투숙객 두 명이 나왔다. 마치 럭비 선수처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모로코 사내 둘이었다. 그들은 자초지종을 묻더니 안내자를 나무랐다. 그러자 그는 풀이 죽어 혼자 중얼중얼 대기 시작했고, 이내 자전거 핸들을 잡아끌고 길을 돌아가려고 했다. 아, 그래도 길 안내자가 아니었던가.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20디르함을 건넸다. 그는 돈을 낚아채더니 매서운 눈으로 삿대질을 하며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마 “그렇게 살지마!”이지 않았을까. 혹은 “밤길 조심해.”였을지도.
호텔에 도착한 진이 빠져버렸다. 이제 막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그날의 일정도 미뤄둔 채 로비에 멍하니 앉아 휴식을 취했다. 내가 피곤한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호구가 되지 않으려 애를 쓴 탓이었다. 그들에게 호구 잡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곁에 앉아 있던 프랑스 여행객들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은 모두 바가지를 쓴 채 여기까지 왔다. 택시도 한 번에 잡았고, 길 안내자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아주 쉽게 말이다. 그래서인지 피곤한 기색 없이 한없이 밝아 보였다.
'세상은 호구에게 세금을 징수한다.' 그렇게 나는 귀납적 결론을 내렸다. 호구라면 호구세를 내야하는 것이다. 세금은 내지 않으면 피곤한 일만 벌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호구세만은 달랐다. 호구세의 탈세는 불법이 아니었다. 호구세에 대해서 만큼은 충실한 납세자가 되기 싫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세금 징수원들이 내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다짐했다. 똑똑해져야겠다고, 세상 물정을 얼른 배워야겠다고, 할 말은 해야겠다고, 사람을 쉽게 믿지 말아야겠다고. 호구가 되기 싫은 호구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