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이방, 어느 낯선 이가 건네던 술 한잔이 그립다
파리의 몽마르트에 위치한 조그마한 스튜디오에 살던 지난여름. 해가 지고 조금은 견딜 수 없는 어스름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앙드레 지드의 책과 노트를 들곤 거리로 향했다. 적(籍)을 두고 있던 푸헝크흐 가(街)를 하염없이 거닐다 발길이 멈춘 곳은 작고 허름한 술집. 마음이 끌리는 테이블에 자릴 잡았다.
맥주를 시켰다. 잔을 홀짝이며 지드를 읽었고, 노트에 단상들을 적었으며, 아름답게 파리의 밤을 맞이하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비운 맥주 두 잔. 취기가 돌았다. 허전했다. 술집에 홀로 앉아있는 손님은 나 하나. 괜스레 울적해졌다. 턱을 괴고 상념에 빠져 있는데 젊은 여주인이 내게 다가왔다.
앉아도 될까? 파리에는 어떻게 온 거야? 여행? 소설을 쓰러 왔다고? 그럼 여기에 살고 있는 거야? 정말? 그래서 책을 읽고 있었구나. 읽던 책은 뭐야? 앙드레 지드? 아니 읽어보진 못했어. 책은 질색이거든. 나도 푸헝크흐에 사는데! 우린 그럼 이웃이네. 내 가게에 온 한국인은 네가 처음이야. 내가 한 잔 살게. 이건 수박으로 담근 보드카야. 여름이고 해서 만들었거든. 어때 맛있지. 자주 놀러 와. 저녁에 들르면 보드카는 공짜로 줄게. 언제든지 와.
내가 울적해 보였던 것일까. 홀로 온 이방인이 안쓰러워 보였던 것일까. 그건 동정심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호의였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보드카의 본질 따위는 상관할 것도 없이, 나는 이미 충만했던 것이다. 스튜디오로 돌아가는 길, 입안에 맴도는 수박과 보드카의 향이 어찌나 달콤했던지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그 술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위안도, 우정도, 사랑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파리에서 우울과 고독의 극한까지 가보고 싶었던 나는, 내겐 그저 그날의 보드카 한 잔의 달콤함이면 충분하다고, 아니 과분하다고까지 여겼던 것이다. 나는 다시 달팽이처럼 스튜디오에 기어들어갔다.
그로부터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대한민국 어느 한 구석에 위치한 내방. 나는 혼란스럽다. 지금 이곳에서 지난여름 파리의 스튜디오의 정취가 느껴지기에. 무엇 때문에 익숙한 장소에 낯선 곳의 정취가 느껴진단 말인가. 달라진 것은 그저 장소뿐이란 말인가.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란 말인가.
푸헝크흐 가로 나아가 다시 그 술집으로 향하고 싶다. 맥주 한 잔과 함께 넘어가던 책장도, 까맣게 채워져 가던 노트도 멋지고 낭만적으로만 느껴지던 그곳에. 그런 내게 따스한 관심과 사랑을 건네던 누군가 기다리고 있던 그곳에. 창밖을 내다본다. 아무래도 이곳엔 보드카 한 잔 얻어먹을 곳이 없는 것 같다.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