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욕하고 싶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일상 언어에 대하여

by 이우

욕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스물한 살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은 나는 큰 감명을 받고 말았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한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드러낸다는 노자의 말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욕을 밥 먹듯이 해온 나였다. 그게 사내 다운 것이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그건 멋진 게 아니라 상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훌륭하고 고매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부터 욕을 하지 않게로 결심했다.


그렇게 욕을 하지 않으며 이십 대를 보냈다. 군대라는 사내들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롭게도 욕을 하지 않으니 인격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감정을 내뱉지 않으니 사려 깊어졌고,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지도 않았다. 또 까불거리던 성격도 무척이나 차분해졌다. 함부로 말하기보단 오히려 침묵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대화보다는 혼자 책 읽고 생각하는 일이 좋아졌다. 어언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일상 언어에 대하여 ©2018, leewoo



그 변화를 자각할 때쯤엔 소중한 친구들도 자연스레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 곁에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던 것이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보다 지금의 나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소설가들과 그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었다. 이제는 죽어 세상에 없는, 그저 가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들이 나의 절친이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나는 우연찮게 독서의 길에서 문학을 사랑하게 됐고,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십 년 만 만난 친구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 어색한 마음으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야, 새끼 존나 오랜만이다. 뭐 하고 지냈던 거야." 하객 중 한 명이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학창 시절의 절친이었다. "응, 그래. 참 오랜만이다."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뭐야... 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그 시절에는 무척이나 까불거리던 나였다. 물론 친구가 반갑긴 했다. 하지만 도무지 예전처럼 친구에게 반가움을 표시할 수 없었다.


친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좀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두들 교복만 안 입었다 뿐이지 그때 그 시절처럼 가벼운 욕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예전처럼 대했지만, 나는 예전처럼 받아치질 못했다. 그들의 언어가 마치 외국어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문학 속에서 배운 고매한 언어와 문화 코드로는 친구들과 도저히 소통할 수 없었다. 서둘러 식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친구였다. 식장에서 마주쳤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그는 소설을 쓴다는 내게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작가 지망생이 무슨 프로필 사진이야." 하지만 그는 무명 때 찍어야 틀에 갇히지 않은 사진이 나온다며 언제든지 스튜디오에 들르라고 했다. 이제는 너무 멀어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고맙게도 여전히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찮게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고, 책에 담길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게 되었다. 친구의 제안이 떠올라 그에게 찾아갔다.




친구의 도움 덕분에 출판할 수 있었던 나의 소설 ©2018, leewoo



와인 한 병을 사 갔다. 잔을 기울이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셔터 소리와 함께 그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억을 곱씹었으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고백했다. 십 년의 공백은 단숨에 메워졌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도 소주를 마시러, 양주를 마시러 술집을 전전했다. 학창 시절처럼 노래방에서 신나게 뛰어놀았고, 또 무엇이 즐거웠던지 새벽, 강남의 텅 빈 사 차선 도로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수학여행 때처럼, 수련회의 밤처럼, 함께 같은 방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새끼 그새 카톡 프로필 바꿨네.”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여기저기에 사진을 자랑하고 다녔다. 소설책에 실은 것도 모자라 SNS를 도배를 했고 카톡 프로필도 바꾸었다. 친구의 욕설이 어쩐지 낯설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그때의 나로 대해주는 친구. 나도 그때처럼 욕으로 답장을 할까 했다. 하지만 아직은 부끄러웠다. 너무나도 익숙한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킨 채 답장을 보냈다. 친구는 내가 얼마나 욕을 하고 싶었는지 알기나 할까.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저 독서의 세계에 빠지면서 친구들과의 일상 언어와 공통의 주파수를 잃어버렸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던 그때의 나 자신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가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대로 있어주었다. 그저 나 혼자 도덕군자가 되겠다며 익숙한 세상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고갤 돌린 것뿐이었다. 이제는 잃어버린 정겨운 친구들을 되찾고 싶어 졌다. 다음에 녀석을 만나면 정겨운 욕 한마디를 해볼까 한다. 노자여, 이제 부디 나를 놓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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