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양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속에서, 적당한 감칠맛을 찾다
"아직도 너네 어머니가 해주신 밥 생각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그는 벌써 십 년 전 일인데도 먹었던 메뉴며 양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 일곱 명이 집에 놀러 왔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거한 삼겹살 파티를 준비해주셨다. 이어 푸짐한 해물탕도 나왔다. 우리는 늦은 새벽까지 실컷 먹고 마시며 놀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우리를 깨워 식탁에 강제로 앉히셨다. 일곱 개의 대접에는 영계가 한 마리씩 든 삼계탕이 있었다. "남기지 말고 다 먹으렴." 어머니가 말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도 그날 느꼈던 포만감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진짜 하루 종일 배 불렀던 날이었어." "맞아 아침에 먹었던 삼계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니까." 그들에게 그날의 일은 '특별함'으로 기억에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내겐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이었다. 어머니는 정말 손이 크시다. 한 번 요리를 하면 정말 푸짐하게 하신다. 가족이든 손님이든 배불리 먹이셔야만 성에 차신다. 마치 '넉넉함'을 삶의 미덕으로 여기며 사신다고나 할까.
군대에서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면회를 오신 어머니는 300인분의 떡을 해오셨다.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떡 박스로 가득했다. 전화를 했을 때부터 낌새가 이상하긴 했었다. "거긴 중대원이 몇 명이니?" 나는 150명이라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갸우뚱했다. 어머니가 이런 것까지 궁금해 하시나? 에이, 설마... 하지만 어머니는 150명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두 배의 양을 준비해오셨다. 전역한 지 어언 십 년. 함께 복무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떡 이야기를 한다.
주위 사람들은 언제나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일 같이 어머니의 음식을 마주한 나는 그 넉넉함을 싫어한다. 그 넉넉함이 요리뿐만 아니라 재료에도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좋다고 여기는, 또 세간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많이 넣도록 유독 신경을 쓴다. 다른 재료에 비해 일단 고기가 많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들깨의 효능을 들은 뒤로는 모든 음식에 들깨 가루가 수북이 뿌려진다. 잡곡이 좋다는 이유로 밥은 약밥처럼 만들어진다. 레몬이 너무 많이 들어간 레몬 물은 너무 셔서 마실 수가 없다.
식탁은 물론 그릇에 담긴 음식 하나하나 느껴지는 넉넉함은 내겐 과함으로 느껴진다. 그런 과함은 식당엘 가도 마찬가지이다. 괜찮은 식당을 구분 짓는 잣대는 맛이 아닌 양이다. 뷔페를 갈 때면 언제나 나를 다그친다. "고기를 먹어야지." "고기만 먹어." "무슨 디저트야. 고기를 더 먹어." "한 접시 더 먹어." 밥을 먹는 내내 주고받는 주된 대화가 이것이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만큼 적당히 먹을 거라고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가 배가 불러서 그렇지."
물론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어머니는 일찍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맏이라는 책무를 느끼며 가족들과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아버지와 함께 맨손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도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어머니를 일평생 괴롭혀온 것은 궁핍함, 부족함, 결핍이었다. 그것들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일까. 어머니는 이제 넉넉해졌지만 여전히 넉넉함에 극도로 집착하신다.
반면 나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언제나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일평생 느껴온 부족함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몸에 벤 것은 넘침, 넉넉함, 과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은 지금은 이별한 여자 친구네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게 정성스레 준비한 요리를 식탁에 내왔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고, 맛도 일품인 스파게티였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건 일 인분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말았다. 넉넉하지 않아서.
어머니의 넉넉함은 비단 요리에만 깃들어있지 않다. 넉넉한 삶을 위해 노동, 근면성실, 노력,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불안과 고난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제는 직원도 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또 도와줄 만큼 넉넉해진 삶을 산다. 하지만 여전히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넉넉해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일하고, 성실해야 하며, 여유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여전히 밤낮으로 일하신다. 직원들은 가는 휴가를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어머니의 삶은 자신의 요리처럼 여전히 퍽퍽한 것이다.
이제 '배가 부른' 나는 맛을 추구한다. 언제나 식탁에 오르는 건 푸짐한 삼계탕, 넉넉한 해물탕, 넘치는 제육볶음, 점액처럼 진한 사골곰탕이었다. 이따금씩 익숙해진 과함이 아닌 생소한 적당함이 필요할 땐 내가 요리를 한다. 알리올리오, 까르보나라, 감바스, 샤브샤브.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서 과하지 않은 재료로 적당한 양을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깔끔하게 적당한 양이 담긴 요리는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그 적당한 맛은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주는 행복한 맛이다.
어머니는 나의 요리를 마주하면 항상 말한다. "맛있긴 한데 넉넉하게 좀 하지 그랬니."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맛있게 살고 싶어요." 이 말엔 맛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맛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유와 여가가 있는, 그리고 그것이 적당해도 만끽할 줄 아는 삶이다. 나 역시 어머니를 닮아 넉넉함뿐만 아니라 노력과 고난이 몸에 배어있다. 뭐든 힘들게 해야만 성에 찬다. 그리고 어딘가 과하고 퍽퍽한 음식을 먹는다. 좀처럼 행복하지가 않다. 행복이 필요했다.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다. 부족함에도 과함에도 행복은 결코 깃들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현인들이 중용을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적당함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맛있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