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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Feb 10. 2019

야고보의 길에서 야곱을 찾다

산티아고에 묻혀있는 사람은 내가 알던 야곱이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산티아고 순례를 부추겼던 것은 나의 무지와 몰이해가 한몫했다. 순례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라곤 고작 산티아고가 성聖 야고보의 스페인식 표현이라는 것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그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순례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수천 년 동안 순례자들을 유혹했던 야고보란 인물에 대해서였다. 나는 야고보를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과 동일시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고보와 야곱이 단지 오렌지와 어륀지 정도의 발음 차이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야곱은 누구인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창세기」에서였다. 그는 이삭의 둘째 아들이자 장남 에서의 동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특혜와 권리는 장자가 갖기 마련이다. 때문에 야곱은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조건에 굴복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쟁취하고자 했다. 어느 날 들에서 사냥을 하다 돌아온 에서는 몹시나 허기져 있었다. 마침 야곱은 팥죽을 쑤고 있었다. 형이 죽을 달라고 하자 야곱은 제안을 한다.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사겠다고. 에서는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가 대수냐며 거래를 받아들인다. 


또 어느 날엔 노쇠한 이삭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장남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한다. 야곱은 형보다 자신을 더 아끼 는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노안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속여 장남의 축복을 가로챈다. 이 축복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주셨던 것이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던 축복이었다. 장자의 권리에 이어 축복까지 빼앗긴 에서는 복수심에 동생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야곱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의 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해 이십 년을 산다.


마침내 야곱은 자손들과 함께 고향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귀향길에 얍복 강가에서 천사를 만난다. 그는 다짜고짜 천사의 허리춤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난데없는 씨름이 벌어졌다. 하지만 천사는 무려 절대적인 권 능을 가진 하느님의 대리인이었다. 그만큼 힘도 권능도 막강했다. 야곱은 그만 허벅지 부상을 입지만 천사를 끝까지 그를 움켜잡고 놓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자신에 게 축복을 내릴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며 말도 안 되는 협 박을 한 것이었다. 한낱 인간이 천사와 맞붙은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결국 지친 천사는 말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마침내 야곱은 천사의 축복마저 받게 되었다. 야곱은 세상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쟁취해냈다. 어찌 보면 도의적이지도 않고 약삭빠르고 간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야곱의 야망과 끈기 그리고 인내가 내겐 고귀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야곱을 마치 영웅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와 알렉산더 루이스 를루아의 유화는 영웅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해주었다. 아니, 우상화 작업에 한몫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도 야곱처럼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싶었다. 문학 적 소양도 없고,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멋진 소설가 가 되고 싶었다. 소설가이자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현실적인 요인들이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야곱처럼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며 세상을 붙들고 늘어지는 수밖에. 


그리하여 나는 우상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길을 묵묵히 걸으면서도 부단하게 소설을 써나갔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갈망하던 야곱처럼 나만의 씨름을 해나갔다. 영웅이자 우상인 ‘야곱’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진짜 소설가가, 예술가가 된 것 같은 야릇한 기분마저 들었다. 순례길 위에서 오직 나 혼자만 야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진짜 순례를 하고 있다 고 자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야곱에 취해 있던 나의 무지는 머지않아 드러나고 말았다. 


순례길의 막바지 무렵이었다. “야고보는 말이지, 어디 보자....” 마리나가 의자에 앉아 알베르게 한편에 있던 낡은 책을 펼쳤다. 우리는 마치 할머니에게서 옛이야기를 듣듯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고, 전설을 듣기에 좋은 분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야고보는 내가 알던 야곱이 아니었다. 나를 매료시켰던 천사와의 씨름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산티아고에 안치된 야고보는 예수의 첫 번째 제자이자, 헤롯왕 아그리 파 1세에 의해 죽은 순교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9세기 즈음 한 별빛이 비치는 동굴 속에서 그의 유 해를 발견하게 되었대. 그렇게 야고보는 산티아고에 묻히게 된거지.” 나는 그제야 산티아고에 대한 환상이 나의 무지와 몰이해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야고보와 야곱은 동명이인도 아닌데 어떻게 혼동할 수 있는 것일까. 둘 사이의 유사성은 그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야고보의 길 위에 야곱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엉뚱한 길 위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낙담할 수는 없었다. 사실 희망과 이상의 동의어로 쓰이는 꿈이라는 것이 본래 현실과는 극명하게 다른 것 아니겠는가. 꿈과 현실의 간극을 깨달았다 하 더라도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 깨지 않으려면 계속 꿈을 꾸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가슴에 는 야곱을 품은 채, 계속해서 순례길을 걸었다. 야곱처럼 세상으로부터 축복을 받아내야 했기에. 허나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야고보의 길이 바보같이 야곱을 좇았던 나의 길이 될는지도. 




어쩌면 이 야고보의 길이 바보같이 야곱을 좇았던 나의 길이 될는지도. ©2015, leewoo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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