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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Feb 03. 2019

말할 수 없는 고통

길 위에 선 나는 과연 어떤 순례자였던가



일이 터진 건 어느 이른 새벽이었다. 하늘에는 별빛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름다움을 보고 감상에 젖었을 터였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식은땀이 났다. 입술을 깨물었다. 앞서 간 친구들을 하나둘 제치며 빠르게 나아갔다. 그들을 모조리 제쳐버리고 싶었다. 새벽부터 난데없는 경주를 벌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배에서 전해져 오는 신호 때문이었다. 너무나 급했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언제나 평판을 두려워한 나였다. 잦은 신춘문예 낙선 때문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떻게 평가할까. 그 권위적인 시선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 평판의 문제는 조금 성질이 다르긴 했다. 이것은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학창 시절로 가야 했다. 그곳에 근원적인 두려움이 장복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실수로 바지에 용변을 본 친구들은 언제나 놀림감이 되게 마련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졸업할 때까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고 마는 것이다. 


생리적 현상을 스스로 깔끔이 해결한다는 건 사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이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여주인공의 남편 은 어느 날 갑자기 장님이 되고 만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바지에 변을 보고 만다. 그는 자신을 씻겨주는 아내의 손길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밀려오는 수치심과, 그로부터 존엄성의 상실을 맛봤기 때문에.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생리 현상의 자주적인 해결이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동물적인 존재이기에 때때로 의지와 상관없이 생리적 현상에 굴복하곤 한다. 사실이 그러할진 대 나는 너무나 짓궂었다. 친구들을 ‘똥쟁이’라고 얼마나 놀려댔던가. 아, 모든 게 업보여라. 내게도 이제 곧 꼬리표가 따라붙을 처지였다. 저 멀리 목장이 보였다. 허나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었다. 친구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환 여기서 뭐해?” “으응... 난 조금 쉬다 가려고. 이렇게 별도 예쁘고....” 애써 미소 지으며 친구들을 배웅했다. 


그들이 지나가기가 무섭게 목장 뒤편으로 숨어들었다. 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코를 날름 핥았다. 한낮 가축들 앞에서 수치스러웠지만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그때였다. “으악!” 엉덩이가 따끔했다. 처음엔 벌레에 물리거나 벌에라도 쏘인 줄 알았다.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게 고통을 안겨준 건 미세한 가시가 돋친 식물이었다. 고통에 고통이 더해졌다. 일단 오랜 고통을 먼저 해결했다. 


고통은 대체되고 말았다. 나를 공격한 풀은 아무래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성을 가진 식물인 것 같았다. 중요 부위가 점점 부어오르고 뜨거워지더니 가려움까지 느껴졌다. 지켜보는 이도 없겠다, 목장 한편에 마련된 수도꼭지에 몸을 맡겼다. 바디 샤워를 꺼내 닦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나아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목장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바지를 추켜 입었다. “메에에.” 소 들은 놀리듯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걷는 게 곤욕이었다. 엉덩이 상태가 궁금했지만 어떻게 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진을 찍기는 더더욱 싫었다. 또 길 위에는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에 뜨겁고 간지러웠지만 긁적일 수 없었다. 그저 말 못 할 고통을 감내하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말 못 할 고통은 여정을 풀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니 다음 날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말할 수 없던 고통을 떠올려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잔인했던 고통을. 하지만 어디 그때뿐이었던가. 지금 도 여전히 말 못 할 고통들을 홀로 안고 오늘을 지내고 있지 않은가. 드러내기 부끄러워서, 체면이 구겨질 것 같아서, 평판에 금이 갈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 못 한채 홀로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허나 주저앉지 말자. 감내하고 묵묵히 걷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웃음으로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되어 있을 테니. 그날의 고통처럼. 





허나 주저앉지 말자. 감내하고 묵묵히 걷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웃음으로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되어 있을 테니. ©2015, leewoo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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