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를 잃은 채 그리스의 아폴론 섬, 세상의 끝까지 갔던 까닭은...
피레우스로부터 페리를 타고 여섯 시간 만에 도착한 낙소스 섬. 나는 여행객을 유혹하는 눈부시게 새하얀 항구마을에 눈 돌린 채 낡은 택시에 올라탔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섬의 최북단, 그곳에 자리 잡은 아폴론 해변. 조그마한 마을, 텅 빈 해변, 몰아치는 파도. 세상의 끝이 바로 여기 같았다. 여기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갈 수 있는 길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 뿐이었다. 어쩌자고 세상의 끝까지 온 것일까.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극단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온갖 서적을 뒤적이며 선인들의 사상속을 헤엄쳤으며, 방황길에 올라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았다. 모험심 때문이었을지도, 아니면 반항심, 방랑벽, 허영심, 치기, 무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데 문득, 에게해의 파도를 바라보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중심이 되어 줄 무언가를 갖지 못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태양계의 행성은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 혜성들도, 각 행성의 위성들도 모두 구심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일정한 공전 궤도를 돌고있다. 강한 인력으로 잡아당겨주는 중심이 없는 위성은 일정한 궤도를 못한 채 광활한 우주를 떠돌게 마련이다. 달도 지구가 없었따면 우주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떠돌이 행성처럼 일정한 궤도도 없이 떠도는 것이다. 중심이 없기 때문에.
홀로 남겨진 해변, 서글픔이 밀려왔다. 만일 그때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면, 여기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을 결심하지도 않았겠지. 그 아름다움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그것에 버금가는 무언갈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방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버금되는 것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그날의 슬픔이 내겐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넓은 세계 속에 몸 던져볼 수 있었으니.
그렇다. 궤도 없는 나는 얼마나 불행이며 동시에 행운인가. 오는 금요일에는 그리스를 떠나 전설 속 카우카소스의 세계, 페르시아의 땅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더 낯설고 신비한 세계로, 그래서 더 매혹적인 세계로. 나는 궤도가 없는 행성이다. 이제 또 다른 세상의 끝에 도달하겠지.
- 2017년의 여름, 그리스의 낙소스 섬에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