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했던 모로코의 나날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일 년을 살기로 결심했다.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몰아치는 대서양의 파도, 이슬람이라는 낯선 세계 그리고 아랍인이라는 전혀 새로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새로운 인생은 낯선 세상에서 책에 둘러싸여 홀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어느새 나는 라바트에 도착했고, 보금자리를 구해 꿈꿔왔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목적'에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이 간소한 목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던 모로코 교수님이 말했다. "모로코에서 사는 외국인은 거주증이라는 걸 만들어야 해." 거주증이 없는 외국인은 모로코에서 단 3개월밖에 체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까짓것 하나 만들지 뭐. 모로코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친구를 통해 들어보니, 거주증을 만드는데 필요한 서류들이 꽤 많았다. 생각만 해도 피곤했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일사천리로 진행하기로 했다.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았다. 가족관계 증명서, 최종학력 증명서, 성적 증명서, 여권 사본, 증명사진 8장, 주택 임차 계약서, 건강 진단서, 범죄 사실 증명서, 모로코 내 은행 계좌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와 최종학력 증명서 그리고 성적 증명서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어렵지 않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대사관이 먼 곳에 있어 신청하고 찾으러 가기 조금 복잡하고 번거로웠을 뿐이었다. 여권 사본과 증명사진은 이미 갖고 있었고, 이제 필요한 것은 주택 임차 계약서, 건강 진단서, 은행 계좌 증명서, 범죄 사실 증명서 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내가 한국인인 탓도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서류 하나 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사무소나 시청에 가면 주민등록등본부터 토지 대장까지 정부에서 증빙하는 서류를 언제 어느 때나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은행 계좌도 마찬가지였다. 신분증만 갖고 가면 언제든지 개설할 수 있었다. 건강 검진도 빠르면 당일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로코는 한국이 아니었다. 모로코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는 세계였다.
안일한 생각을 갖고 서류를 발급받으러 간 나는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내가 왜 네가 사는 걸 증명해줘야 하지? 네가 이 서류를 어디에 쓸지도 모르고, 어떤 문제를 저지를지도 모르는데? 난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 건물 관리소장이 내게 한 말이었다. 거주증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도 내가 알 바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자신이 무슨 권위자라도 된다는 듯 고갤 빳빳이 세운 채 나를 무시하듯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인데, 그걸 증명받은 건 나의 권리 아니란 말인가.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지위를 개인적인 사사로움을 갖고 임하고 있었다. 공적인 업무라도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런 권위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은 되려 권위에 약한 법이다. 나는 모로코 교수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학 총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대학 총장이 관리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서류를 발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튿날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류를 발급해주었다. 어차피 해줄 거면 빨리 좀 해주던가! 이깟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실랑이를 벌이느라 어언 삼 주가 소요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건강 진단서 차례였다. 보건소로 향했다. 말이 건강 진단이었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검사였다. 의사는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곤 서류를 들춰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아픈 데가 있나요. 최근 큰 병을 치렀던 적이 있나요. 담배는 피우나요. 마약을 해본 적 있습니까. 충치 검사 좀 할까요. 양치를 잘하는군요. 그걸로 끝이었다. 건강 검진이라기보단 무슨 성격 테스트처럼 느껴졌다. 그는 최종적으로 폐 엑스레이 사진이 필요하다며 그걸 가져오면 서류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엑스레이는 여기서 찍을 수 없으니 큰 병원에 가야 합니다."
빨리 거주증을 받고 싶었다. 서둘러 큰 병원으로 향했다. 긴 대기시간 끝에 엑스레이를 찍었다. 사진을 보건소에 제출했다. 하지만 서류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발급되지 않았다. 간호사는 의사가 자리를 비웠다는 말뿐이었고, 의사에게 연락을 해도 다음에 주겠다, 지금은 휴가를 갔다는 말뿐이었다. 깜깜무소식이었다. 슬슬 지쳐갔다. 서류 한 장 한 장을 받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어야 했고, 기다려야 했고, 또 인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맛보기일 뿐이었다.
범죄 사실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법무부로 갔다. 창구의 직원이 말했다. "다시 해오세요." 서류를 쓰고 제출 서류도 구비해서 갔는데 무슨 말인가! "서류에 스티커를 붙여야 해요." "스티커요? 그건 어디서 구하는데요?" "경비에게 물어보세요." 경비 아저씨는 손짓 발짓으로 스티커를 파는 문구점을 안내했다. 삼십 분을 헤맨 끝에 문구점을 찾아 스티커를 구입했다. 서둘러 법무부로 돌아갔는데 이제 퇴근시간이라며 다음에 오라고 했다. 이를 악물고 집으로 돌아가 다음 날 서류를 제출했다. 연락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질 않았다.
사실 거주증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은행에 간 것이었다. 은행원은 외국인이 계좌를 개설하려면 재학 증명서, 임차 계약서, 여권 사본, 증명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모든 걸 구비해서 다시 찾아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개설이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다. 일주 후에도, 이주 후에도, 한 달 후에도 찾아갔다. 하지만 항상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인샤알라." 이 말은 신의 뜻대로를 뜻하는 아랍어였다. 은행 계좌가 무슨 신의 뜻대로 만들어지냐! 다시 찾아가거나 전화해도 마찬가지였다. "인샤알라." 어언 두 달이 지나가버렸다.
갖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뛰어다녔건만 구비서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주위 외국인들에게 들어보니 거주증을 만들기까지 어떤 사람은 한 달이 걸렸고, 또 어떤 사람은 다섯 달이 걸렸다고 했다. 행정 절차가 복잡한 것이 아니라, 행정 처리하는 사람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의견이었다. "여기선 모든 것이 여기서는 '인샤알라'지요." 그렇다. 신의 뜻대로 나는 거주증을 만들지 못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어언 세 달이 다 되었다. 이제 나는 거주증이 없으면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 정녕 신의 뜻이란 말인가!
그동안 소설을 집필하며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지내겠다던 나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세 달이라는 시간을 거주증을 만드는데 씨름하며 허비했던 것이었다. 육두문자가 절로 나왔다. 마치 모로코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디 한번 살아내봐." 그래, 살아내고 말겠다! 거주증 따위는 만들지 않고도 여기서 내가 꿈꾸는 대로 살고 말겠다! 이제 방법은 여권에 새로운 입국 도장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세 달에 한 번씩 가까운 해외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임박할 때마다 나는 마드리드로, 파리로, 밀라노로 떠났다.
나는 살아냈다. 거주증 없이도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고 모로코에서 일 년을 살아냈다. 애초 꿈꾸었던 것처럼 많은 책들을 읽었고 계획했던 소설을 써냈다. 인샤알라!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거주증 없이도 일 년을 살아냈던 것처럼, 세상은 굳이 정도(正道)가 아니어도 목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오늘을 사는 나는, 지난날 모로코가 내게 했던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어디 한번 살아내봐." 나는 다짐한다. 모로코에서의 나날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이 가혹한 세상을 살아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