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미지의 섬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무작정 신칸센에 올라탔다. 열차는 서쪽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나가사키. 아무런 목적도 없는 정말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그곳이 어떤 도시인지, 무엇을 볼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나가사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짬뽕이 전부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딘가로 가야 하고, 무언가를 봐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 그런 천편일률적인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삶에서 충실하게 의무 목록을 따르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여행만큼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플랫폼에 내리니 낯선 정취가 밀려왔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미지의 세계에 몸을 던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떠나온 여행이라고 해서 무작정 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정보와 최소한의 선택지는 있어야 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관광 안내소로 향해 지도 한 장을 얻는 것이다. 지도를 펼친 뒤 지역 정보를 한눈에 내려다본다. 마음이 이끌리는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이제 그곳으로 향하면 된다. 지도 위에서 나를 매혹한 것은 회색의 섬이었다.
섬 위에는 '군함도'라고 쓰여있었다. 군함처럼 생긴 섬인가?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지도를 들고 안내 직원에게 갔다. "여기에 어떻게 가나요?" 참고로 일본 관광 안내소 직원은 정말 친절하다. 내게 지도를 보며 친절히 설명해준 것도 모자라 가는 방법을 프린트까지 해서 주었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항구로 향해 티켓을 끊으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파도가 높은 날에는 운행을 안 한다고 했다. 다행히 날은 화창했다.
항구에 도착하니 한눈에 '군함도'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군함도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고 있었다. 티켓을 사러 가니 창구에서는 매진이라고 했다. 갈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물어봤지만 직원은 미안해하며 없다고 했다. 아쉬운 기색으로 돌아서는 내가 안쓰러웠던 것일까. 그는 매표소를 나와 내게 귀띔을 해주었다. 간혹 가다 예매를 해놓고 오지 않는 손님이 있으면 티켓을 살 수 있으니, 출항 십 분 전까지 한 번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세 시간이나 할애할 가치가 있을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매표소 직원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은밀하게 윙크까지 해주었다. "꼭 기다리세요. 반드시 갈 수 있을 거예요." 그의 기분 좋은 미소는 확실하게 나를 군함도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확신이 있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모든 승객들이 페리에 올라타자 직원이 내게 손짓했다. 곧 출항시간이라며 티켓 값도 할인해주었다. 직원들은 내가 승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착장에 묶인 로프를 풀었다. 나직한 뱃고동이 울려 퍼졌다.
설레는 출항과 함께 객실의 커다란 티브이에는 영상이 송출되었다. 군함도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일본이 산업화에 한창 열을 올리던 20세기 초, 하시마(端島) 섬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면적으로는 축구장 다섯 개를 합친 것과 겨우 비슷한 이 섬에 엄청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섬은 탄광으로 개발되었다. 인부들이 결코 출퇴근할 수 없는 외딴섬이었기에 인부들과 그들의 가족이 상주할 수 있는 거주 단지가 들어섰다. 거친 파도로부터 그들의 보금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방파제가 세워졌다.
온통 회색의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하시마 섬은 이제 바다에서 바라보면 항해하는 군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 명칭인 하시마 섬이 아닌, 군함도로 불린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군함에는 무려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했다. 학교도 있었고, 병원도, 목욕탕도, 식당도, 술집도, 경찰서도 있었다.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흑백 사진들과 영상들이 지나갔다. 고된 일을 마치고 목욕으로 피로를 푸는 인부들,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어느 가족, 거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낙네들,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까지. 정겹기 그지없었다.
섬이라면 너무 작은, 군함이라면 너무 큰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석탄이 생산되었다. 이것들은 일본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작은 군함도가 일본 열도를 견인한 셈이었다. 하지만 군함도 전성기를 지나면 퇴역하기 마련이다. 제 몫을 다 한 군함도는 이제 텅 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일본은 이 소중한 군함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유네스코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주었다. 회색 빛으로 보존된 군함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떠 있었다. 바로 내가 그 귀중한 군함을 보러 가는 중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객실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친구가 생겼다. 네덜란드에서 온 조나단과 가이드 사츠키였다. 조나단은 자신의 조국과 역사가 깊은 규슈현을 홀로 여행 중이라고 했고, 사츠키는 방학을 맞아 군함도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동년배이자 대학생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츠키가 기쁜 미소와 함께 바다를 가리켰다. 목적지였던 회색의 섬이었다. 가까워질수록 왜 그곳이 군함도라 불리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드디어 군함에 올라탔다. 섬은 모든 색채와 생기가 빠져버린 잿빛에 가까웠다. 사츠키는 유일하게 영어 안내가 필요한 조나단과 나를 데리고 특별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녀는 인부들이 모여 조회를 하던 운동장, 주민들의 거주 구획, 방파제를 차례로 구경시켜주었다. 정말 영화 세트장처럼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우리는 마치 견학 온 학생들처럼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함께 단체사진도 여러 장이나 남겼다. "언젠가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거야." 내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어떤 소설인지 묻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꼭 쓸 거야."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신비의 섬도 보았으며, 또 그곳을 배경으로 벌어질 미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내게 기분 좋은 이미지로 남은 군함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다음날 카페에 앉아 군함도에 대해 찾아보았다. 하지만 예기지 못한 정보들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신비의 섬이 숨기고 있던 비밀들이 드러났다. 비밀들에 굳이 가제를 붙이자면 다음과 같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어두운 그림자'
알고 보니 일본은 20세기 초, 조선인들을 비롯한 오키나와, 그리고 중국인들을 군함도로 강제 징용해 인권을 유린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강제 징용자의 인터뷰도 보게 되었다. 하루에 겨우 콩깻묵이라 불리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두 덩이와 소금 몇 줌을 먹고 지하 갱도에서 곡괭이질을 해야 했던 강제 징용자들의 삶. 가족과 생이별한 채 실낱 같은 희망에 의지해 매일을 죽음과 사투해야 했던 그들의 젊은 나날들. 할아버지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서럽고 비참했는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한국인의 한이 서린 장소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희희낙락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광부 흉내를 내겠다고 조나단과 안전모까지 쓰고 사진까지 찍지 않았던가. 나가사키에 있는 내내 날씨는 쾌청했지만, 마음은 먹먹하기 그지없었다. 먹먹함은 영감이 되었다. 군함도에 강제 징용당한 어느 한국인 청년을 소설에 그려보자. 이것이면 불경했던 어제의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가사키의 여름 아래 구상된 '회색의 함선과 남겨진 선원들'은 가을이 되어 완성되었다.
그해 겨울, 완성된 소설을 신춘문예로 띄워 보냈다. 내가 세상에 내 보낸 건 소설이기 이전에 속죄였고 호소였다. 사료 조사를 하는 동안 군함도는 이미 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섬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면 위에 고스란히 복원해낸 나의 회색의 섬에 세상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형편없는 필력이었기에 그날의 소설은 당선되지 못한 채 잡음이 되어 사라졌다. 대신 군함도는 그 이후 무한도전을 통해, 그리고 류승완의 영화 <군함도>를 통해 조명되었다. 이야기에 힘을 보탰으면 좋으련만.
군함도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잊혀서는 안 될 진실뿐만이 아니었다. 삶의 교훈도 깨닫게 해 주었다. 혹자는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건 맞는 말이다. 정말 무지했던 탓에 나는 진실을 보지 못했다. 거짓의 군함도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 명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난센스와도 같다. 앎이라는 건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보고 나서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직접 보고 인식하는 것을 토대로 앎을 형성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이렇게 말해도 참이다. '세상은 본 만큼 알게 된다' 과연 내가 거짓의 군함도를 보지 않았다면 그 작은 섬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그 많은 사료들을 찾아가며 군함도에 대해 소설을 쓸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인식의 페이지를 넓혀가는 것이다. 이 페이지에는 훗날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다. 페이지와 관련된 무언가를 말이다. 이것은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을 통해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제 한 개인의 일부, 진정한 앎이 된다. 내게 깊이 아로 새겨진 회색의 섬 군함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