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운동화에 대하여
“이거 신고 나간다.” 아버지가 베이퍼 맥스를 들고 흔들었다. 모임에 가신다고 하셨다. “네.” 뭐 운동화쯤이야. 어스름이 진 새벽,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오셨다. 이상했다. 벗어놓은 신발은 베이퍼 맥스가 아니었다. 허름한 나이키 운동화였다. 취해 쓰러진 아버지, 해질 대로 해진 운동화. 연유를 묻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졌다. 술에 취해 나이키 로고만 보고 신발을 신었을 아버지가. 화를 낼까도 했다. 하지만 헤아려보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 수밖에 없었을까.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온통 나의 신발뿐이었다. 구두부터 부츠, 운동화, 축구화, 샌들. 색도 디자인도 다양했다. 반면 아버지는 딱 세 켤레뿐이었다. 낡은 구두, 낡은 운동화, 낡은 등산화. 언제나 근검절약을 삶의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오신 아버지였다. 반면 그를 닮지 않은 아들은 그의 미덕을 결핍이라 여겼다. 오히려 사치와 멋을 미덕이라 여겼다. 그에게 나이키는 다 같은 나이키가 아니었을까. 아들이 아끼고 좋아하는 나이키. 헌 나이키 신발이 슬프게만 느껴졌다. 해질 대로 해진 처량한 모습이 모두 나의 탓인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