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너무나 가까워진 소통의 시대, 점점 잃어가는 온기에 대하여
누군가의 죽음을 보도하는 뉴스는 말한다. 사인(死因)은 고독이라고. 이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병마와 예기치 못한 사고뿐만이 아니다.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고독의 시대의 막이 올랐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오늘날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 적이 있었던가. 도시 인구의 팽창으로 도시와 도시의 경계가 무너지고 메트로폴리스라는 하나의 광역권이 우후죽순 형성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낯선이의 옷깃을 스친다. 식당 혹은 카페에 앉아 있노라면, 듣고 싶지 않은 타인의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너무나 가까운 세상이다.
인간관계는 SNS의 발달로 더욱더 가까워졌다. 친구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 어떤 옷을 샀는지, 머리는 어떻게 잘랐는지, 점심으로는 무얼 먹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인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지금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있다. 근황을 물을 필요가 없다. 안부를 전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서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날, 우리는 너무 가까워졌다. 실시간으로 안부는 물론 축하와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손 끝에 전해지는 온기를 잃어버렸다. 작년, 출판계에 대히트를 쳤던 에세이집의 제목처럼 '언어의 온도'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본래 원초적인 동물이다. 때로는 말 보다 다정한 눈빛이, 따스한 손길이, 포근한 포옹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어느 유명인의 자살 사건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선물과 팬레터를 보내는 수백만의 팬이 있고, 실시간으로 좋아요와 덧글을 눌러주는 수백만의 팔로워들이 있는데도 그는 죽음을 택했다. 따스한 언어의 홍수 속에서, 넘치는 관심과 사랑 속에서 어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감히 말하고 싶다. 그건 따스한 온기의 결핍 때문이었노라고.
내겐 버터라 이름 지어준 반려묘가 있다. 아무리 불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녀석도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내게 다가온다. 머리를 비비며 쓰다듬어 달라고 눈빛을 보낸다. 나는 버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토닥 두드려줘야할 차례다. 그럼 녀석도 나를 한참이나 핥아주고 작고 예쁜 손으로 꾹꾹 마사지해준다. 이제 원하던 것을 얻은 버터는 볼 일 다 봤다는 듯, 내 곁을 미련 없이 떠난다.
버터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은 버터만도 못한 것이 아닐까. 버터도 용기 내어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온기를 느꼈던 적이, 온기를 전해주었던 적이 오래전 일인 것만 같다. 아버지에게 안겼던 적도, 어머니에게 뽀뽀를 했던 것도, 누이와 살을 부대꼈던 것도, 둘도 없는 친구와 어깨동무를 했던 것도, 이제는 이별한 그녀와 마지막 입맞춤을 했던 것도.
소파에서 곤히 잠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하루하루 외소해져가는 어머니의 측은한 모습을, 이제는 무척이나 멀어진 누이의 뒷모습을, 술자리가 끝나고 외로이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아, 가슴 아프고 애절하여라. 왜, 먼저 손 잡아주지 못했을까. 따스하게 안아주지 못했을까. 어째서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며 고상한 척을 했을까.
어쩐지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그들의 가련하고 쓸쓸한 뒷모습이 모두 나의 탓인 것만 같다. 부디 부덕하고 부끄럼 많은 나를 용서해주시길. 아, 본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위대한 시인의 애절한 사랑 노래만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온기를 주고 또 받고 싶어 하는 길고양이의 작고 예쁜 애무(愛撫)의 몸짓, 그것 또한 사랑인 것이다. 모두가 너무나 가까워진 소통의 시대, 역설적으로 온기에 결핍되고 말았다.
마그네슘에 결핍되면 눈 밑이 떨린다. 비타민A에 결핍되면 야맹증에 걸린다. 애무에 결핍되면 존재가 흔들린다. 무기질과 비타민의 결핍은 영양제 하나로 해결된다. 하지만 애무의 결핍은 진단서와 처방전을 갖고도 처방 받을 약국조차 없다. 아, 가련한 존재여. 도대체 그대의 고상하고 까다로운 결핍을 어디서 채운단 말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버터 같은 존재가 되거나, 버터 같은 존재를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