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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r 26. 2019

아버지, 스페어타이어

어린 아들에겐 그래도 아버지가 있다

©leewoo, 2017




비 오는 날이었다. 차에 타려는데 타이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쉬이익. 바람이 빠지는 소리였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도 어느 정도까지는 달릴 수 있다고. 눌러보니 아직 단단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있겠어. 일단 집 근처까지 가서 카센터에 들르면 되지 뭐. 안일한 생각을 하며 시동을 걸었다.


십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펑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깜빡이를 켜고 갓길에 정차를 했다. 차에서 내려 보니 타이어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 보험에 가입했으니 전화를 해보자.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보험 아저씨 번호를 찾는데 아버지 번호가 눈에 띄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죠. 보험을 부르면 되는 걸까요. 애처럼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보험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며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차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세삼스래 스스로가 우습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다 컸다고 자부했던 나였다. 더 이상 아버지에게 배울 것은 없다고 오만했던 나였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일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내게 묻는 일이 많아졌다. 이메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인쇄를 어떻게 하는지. 복사를 어떻게 하는지. 유튜브를 어떻게 하는지. 페이스북을 어떻게 하는지.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어떻게 보내는지. IPTV에서 재방송을 어떻게 보는지. 묻고 또 묻는다. 가르쳐주었는데도 해도 안 된다며, 기계가 이상하다며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럴 때면 퉁명스레 대답한다. "아, 진짜 몇 번째예요. 이건 이렇게 하면 된다니까요."


잠시 후 아버지가 스페어타이어와 함께 사고 현장으로 왔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물었다. 다친 데는 없느냐고. 그리곤 트렁크에서 이런저런 장비를 꺼냈다. 아버지는 능숙하게 자키로 차체 한쪽을 들어 올렸다. 육중한 차가 정말 쉽게도 들어 올려졌다. 렌치로 차체에서 타이어를 분리하더니 스페어타이어로 갈아 끼웠다. 아버지 곁에서 비를 맞으며 조수를 자처했다. 난생처음으로 자키와 렌치의 사용법과 타이어 교체 방법을 배웠다.


일을 해결해준 아버지는 먼저 가라고 했다. 백미러로 작아져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든든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아버지가 타이어도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것이. 그래 맞아,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지.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맥가이버와 같은 존재였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만들 수 있으며, 뭐든 해결해줄 수 있었다. 자전거도 고쳐주었으며, 다쳐서 울음을 터뜨리면 상처를 치료해주었고,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땐 따스히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타이어를 갈아 끼워 주셨다.


이제는 배울 게 없다고 여겼던 아버지. 오히려 내가 가르쳐줘야 한다고 여겼던 아버지. 하지만 그건 젊은이의 오만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사랑도, 사람도, 꿈도 지난할 뿐이었다. 세상에는 오히려 두려울 정도로 불가해한 것들 투성이었다.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째서일까. 홀로 텅 빈 밤의 공원을 산책하며 그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달려와 내가 모르는 것을 해결해주던 나의 맥가이버. 문득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그녀를 잡았어야 했던 것인지. 지금 이 길로 나아가도 괜찮은 것인지. 어쩌면 아버지는 알고 계실지 모른다. 길 저편에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전화를 걸지 못했다. 쑥스러워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아직 펑 소리와 함께 주저앉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 어쩐지 쉬이익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래도 내겐 아버지가 있으니까. 돌아가는 길이 두려웠지만 그다지 두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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