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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un 13. 2019

연등

불면 속의 불안에 대하여



군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홀로 남겨져있던 고요한 밤이었다. 저녁 열 시, 날카로운 규율 속에서 취침 점오를 마치면 막사는 일시에 어둠에 잠겼다. 그러면 나는 잠자리에 드는 전우들과는 반대로 몸을 일으켰다. 책과 노트를 챙겨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곳에 마련된 독서대에 앉아 책을 펼쳤다. 열 두시까지 책과 씨름하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다. 온전하게 혼자였던 이 시간이 군 시절 중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간이었다.


부대에서는 이것을 '연등'이라 불렀다. 장병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대대장은 공부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이 제도를 만들었고, 나는 이 제도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주말은 물론이었고, 새벽 근무가 있어도, 훈련이 있어도 연등을 했다. 심지어 다음 날이 휴가여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두 시간씩 일 년 십 개월의 군생활이었으니, 머리가 나빠 암산은 안 되지만 실로 엄청난 시간이었다. 일평생 읽었던 책의 8할은 모두 연등을 통해서였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홀로 책을 읽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하루하루 성숙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었다. 전우들과의 생활 리듬이 전혀 달랐다. 일과 중에도 온통 책 생각뿐이었으며, 틈만 나면 책 읽을 궁리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 체육대회이자 축제 날에는 내가 어떤 군생활을 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곁에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연등을 통해 세상을 향한 담장을 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군 시절도 어언 십 년 전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날의 연등은 내게 습성처럼 자리 잡아 버렸다. 모두가 잠든 밤, 홀로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책을 읽기보단 글을 쓴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한다. 여전히 그날부터 쌓아 온 보잘것없는 성벽 속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과연 나는 그 철옹성 속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나의 이야기는 저 성벽을 넘어 세상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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