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날의 달리기

쌓여만 가는 죄의식에 대하여

by 이우

중학교 시절, 나는 멋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교복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교복을 핏하게 입고 싶었다. 하지만 내 교복은 너무나 컸다. 엄마는 뚱보였던 내가 뚱뚱보가 될 줄 알았는지 엄청나게 큰 교복을 맞춰 준 것이었다. 때는 중학교 2학년, 키도 크고 살도 빠졌는데 교복 마이(재킷)의 핏이 도대체가 말이 아니었다. 너무 어벙했다. 이래선 도저히 간지가 나지 않았다. 교복을 새로 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키가 더 클 것이라며 새로운 마이를 사주지 않았다. 나는 낙심하고 말았다. 맞춰준 마이가 핏하게 맞으려면 정말 뚱뚱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불만이었고, 매일 걱정이었다. 새로운 마이를 사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점심시간, 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무슨 걱정이냐고 대답했다.

그가 창밖으로 운동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 저 운동장에 널려있는 게 교복 마이야. 그냥 하나 가져오면 되지.” 내가 다니던 곳은 남자 중학교로 점심시간만 되면 족히 백 명은 되는 아이들이 뛰어나와 축구를 하곤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교복 재킷을 운동장 스탠드 좌석에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저걸 훔치냐.” 내가 고갤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답답한 듯 짜증까지 냈다. “야, 없어져도 아무도 몰라. 명찰만 바꾸면 되는데. 정 못 하겠으면 내가 해줄게.” 그는 명찰까지 깔끔하게 떼서 내 손에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대가로 2만 원만 달라고 했다. 모든 일이 틀어지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보증까지 했다. 2만 원에 새로운 교복 재킷이 생긴다. 나는 돈만 주면 된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교복 재킷이 생겼고, 원하던 핏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짓 굳었던 친구는 이걸 두고 나를 매일 골탕 먹였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들이 지나갈 때 애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마이~ 구미 먹고 싶다.” “이건 마이~ 필통, 마이~ 펜.” “야, 너 마이~ 컸네.” 하는 말마다 ‘마이’를 갖다 붙였고, ‘마이’를 무척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툭툭 치며 하지 말라고, 떡볶이 같은 걸로 입까지 틀어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나를 놀려먹는 재미에 맛을 들인 것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또다시 나를 골탕 먹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친구를 주먹으로 갈긴 뒤 소리치며 말했다. “너 오늘부로 마이 소리는 다신 입에 담지도 못하게 해줄게!” 나는 학생부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학생부장 선생님께 자수를 했다. 내가 돈을 주고 마이를 훔치게 했다고 말이다. 친구 녀석도 교무실로 끌려왔다. 선생님은 우리 보고 운동장을 50바퀴 뛰라고 했다.

우리는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렸다. 친구 녀석은 뛰는 내내 나를 미친놈이라고 씩씩 거렸다. “닥쳐 이 개자식아.” 나도 그에게 욕을 실컷 퍼붓곤 달렸다. 뛰는 내내 나는 기분이 좋았다. 땀에 흠뻑 젖어도 좋았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좋았다. 달리는 행위 만으로도 나의 죄책감이 씻겨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하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벌써 십오 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따금씩 그날이 생각 나곤 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버렸던 그날의 달리기가 생각난다. 그것은 내 일생 유일무이한 완전한 속죄 의식이었다. 그날 이후 죄를 짓지 않고 살았느냐고? 아니다. 셀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았다.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왔고, 주위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며, 학교에는 나를 잡으러 경찰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세례를 받았던 나는, 언젠가 성당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죄목을 밝혔다. 가림막 너머의 신부님은 내게 말했다. 주기도문을 열 번 외고, 다신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라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죄책감에 가슴 한편 이 찝찝했다.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신학교에서는 죄의 무게를 계산하는 산수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차라리 운동장을 50바퀴 뛰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가득 찰 때,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마음을 전할 수 없을 때, 나는 신을 찾아 성당에 가고 싶다기보단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상쾌해지려면 운동장을 몇 바퀴나 뛰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나의 죗값을 재단할 선생님이 없다. 그저 무작정 달리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더 뛰어야 하는 것일까. 혹시 적게 달린 것은 아닐까. 나는 상쾌하고 또 행복하게 땀에 젖었던 그날의 달리기가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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