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초원에서 본연의 나를 마주하다
내겐 잘 지어진 옷 한 벌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옷이다. 이 옷은 다양한 옷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잘 재단된 기쁨, 행복, 희망, 사랑, 우정, 슬픔, 욕망, 쾌락, 두려움들이 정성스레 기워져 하나의 옷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잘 지어진 옷이 내게 잘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재단된 요소요소는 사실 내게 맞추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세상에 맞춰 지어진 기성복이다. 주변에서도 입고 다니기에 나 역시 입고 다닐 뿐이었다. 그게 내게 맞는 거라 생각한 채.
낯선 이방을 여행하게 되면 이러한 옷을 훌러덩 벗게 된다. 불편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줄자와 초크를 들고 직접 옷을 재단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여유 있으면서도 딱 떨어지게. 이제 기쁨도 행복도 희망도 사랑도 두려움도 모두 내게 맞는 사이즈이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옷이 완성되었다. 걸음걸이는 경쾌해졌고, 움직임도 불편함이 하나 없으며, 거울을 마주해도 기분이 좋다. 몸에 착 감긴다는 표현이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이 옷은 신기하게도 자유로움마저 선사한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무척이나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것, 원시적인 것 그래서 내게 잘 어울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옷을 입고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면 비웃음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머지않아 세상이 지어준 옷으로 다시 갈아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옷은 옷장 한구석에 보관될 것이다. 나의 일부분도 이제 옷장 속에 갇힐 테지. 케이지에 갇힌 어느 야생 동물처럼 잔뜩 겁을 먹은 채.
2019년 8월 14일 몽골의 어느 초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