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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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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Dec 30. 2020

그럼에도 그리운 이슬람의 세계

아틀라스 산맥, 그리고 사하라 사막과 맞닿아 있는 에리쉬


에리쉬. 그곳은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종교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유서 깊은 사원이나 예배당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한적한 아주 작은 소도시 일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살던 한국이 오히려 겉보기에는 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은 밤이 되면 도심에 붉은 십자가가 곳곳에 걸려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한 '종교적인 장소'라 함은, '종교적인 의지가 아주 잘 구현된 곳'이라는 뜻이다. 그네들의 도덕과 관습, 삶 그 자체가 종교 그 자체에 고스란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슬림이었고, 그들이 사는 에리쉬는 이슬람 세계 그 자체였다.


당시 나는 모로코의 수도 라밧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도시가 점점 비어가기 시작했다. 이슬람 최대 명절 이드가 다가오고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드가 이틀 전으로 다가오자 지내던 건물은 그야말로 인기척도 없어졌다. 점점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기에 감내할 용기가 있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온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적적했다. 이웃들과 나누던 소소한 인사, 서로 나누던 호의 가득 한 안부, 그리고 일상 속 그들의 부단한 움직임들은 사실 내 삶의 일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드와 함께 거대한 적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막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노르딘이 서 있었다. 그는 왠지 날카로운 인상에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갖고 있어 좀처럼 다가가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런 그가 내게 찾아왔다. "함께 저녁 먹을래?" 예기치 못한 초대였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날만큼은 혼자 저녁을 먹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저녁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식재료를 사자며 함께 시장에 가자고 했다. 행여나 으슥한 장소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건 나의 편견일 뿐이었다. 그는 가득 사온 온갖 채소와 닭고기로 모로코 전통 음식인 따진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에 걸쳐 완성된 따진은 정말 맛있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며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문학적 열정을 갖고 소설을 쓰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모로코를 택한 이유는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뒤섞인 세계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였고, 가족들이 보고 싶긴 하지만 아직은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그가 물었다. "너도 신을 믿어?" 천주교 세례도 받았지만 그다지 신앙이 없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가 없어?"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 신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야."


"미국이랑 비슷하네." 그는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미국은 언젠가 꼭 여행도 해보고 기회가 되면 살아보고 싶은 나라라고 대답했다. "네가 아직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그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911사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건 미국에서 이슬람 세계를 음해하기 위해 꾸민 자작극이야. 오사마 빈 라덴도 가상의 테러 리스트고. 온 세계가 속고 있는 거야." 잔에 담긴 코카콜라를 마시며 미국을 비판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의 음로론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굳게 믿고 있었기에 괜한 논쟁이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국 비판에 열을 올린 그의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고향에 안 내려가?" "내일 갈 거야. 할 일이 있어서 마무리 짓느라고 조금 늦었지만." 그는 내게 이드에 무얼 할 거냐고 물었다. "집에 있어야지." "혼자 뭐 하게?"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지 뭐." "그러지 말고 나랑 함께 우리 집에 갈래?" "너희 집에?" 내가 놀라 되묻자 그는 명절이 되면 문을 여는 식당도 없다며 쓸쓸하게 혼자 있지 말고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 가족도 좋아할 거야."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모두가 떠난 도시에서 유일하게 나를 초대해준 그였고, 또 적막한 외로움은 싫었으니까.


그와 올라 탄 버스는 한참을 달리고 아틀라스 산맥도 넘어 10시간 만에 그의 고향 에리쉬에 도착했다. 이곳은 모든 건물이 파스텔톤의 옅은 갈색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황량한 대지와 어우러지는 게 마치 사막 위의 도시 같았다. 친구는 이 도시가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 족이 살고 있는 도시이며 자신 역시 이곳의 일원이라고 했다. 7세기에 아랍인이 베르베르의 모로코를 장악한 이래, 오늘날의 모로코는 아랍인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이다. 소수민족이라 할 수 있는 베르베르 족의 세상에 오니 수도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히잡으로 머리를 가린 나이 든 여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왜 저 여자들은 얼굴에 타투를 갖고 있어?" 내가 물었다. "저건 오래된 전통이야. 여자들이 어느 가문의 여자인지, 누구의 아내인지 새겨 놓은 거지.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필요가 없거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여자들은 신분증을 얼굴에 새기고 다니는 거나 다름없었다. 수도와 지방의 문화 차이가 너무나 극명했다. 라밧만 하더라도 많은 여자들이 이슬람의 의무라 할 수 있는 히잡을 머리에 두르지 않은 채 다녔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히잡을 두른 것도 얼굴에 타투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도 젊은 여자들은 타투를 갖고 있지 않은 걸?" "맞아. 저건 우리 세대에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전통이야."


사실 비행시간보다 긴 시간을 버스에 앉아 있었던 터라 집에서 조금 쉬고 싶었다. 하지만 노르딘은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경찰서(파출소나 다름없는)에 데려가 경찰들에게 하나 둘 나를 소개해 주었다. 친구들이 운영하는 상점에 들러 나를 소개해 주었다. 친척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 나를 소개해 주었다. 또 길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마다 나를 소개해 주었다. 카페로도 향했다. 커피를 내리는 주인에게도 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첫날 수십 번이나 자기소개를 해야만 했다. 이방인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지, 이방인을 데려 온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드디어 이번에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신기한 점이 눈에 띄었다. 카페에는 온통 남자들 밖에 없었다. "카페에는 왜 여자들은 없는 거야?" "이 도시는 여자들은 카페에 오는 건 금지되어 있어." "왜?" "여자들은 함부로 밖에 돌아다니면 안 되거든." 도시만 해도 카페에 여자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홀로 와 책을 읽기도, 노트북을 가져와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자들에게 그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심지어 여자들은 식당도 홀로 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노르딘의 집으로 가니 그곳에는 4대의 여자들이 있었다.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네 명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어린 딸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집안일은 모두 그녀들의 차지였다. 친구와 가장인 그의 형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네 명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 물론 집안의 남자들이 그저 노는 것만은 아니었다. 도시에 나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철저하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은 다 함께 점심을 먹던 중에 친구가 여동생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왜 그래?" 내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네 접시가 비어있는데 웃고 떠들고 있잖아!"


그래도 집안의 어려운 일은 남자들의 역할이었다. 때는 이드였고, 노르딘과 함께 시장에서 염소 한 마리 사 왔다. 그는 이 염소가 이드를 위한 제물이라고 했다. 나는 이드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 신은 아들을 기꺼이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믿음을 확인하고는 대신 제물로 바칠 염소를 내려준다. "이스마엘을 살려 준 신의 은총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념하는 게 바로 이드야." 그는 집으로 데려온 염소를 형과 함께 손수 도축했다. 염소의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기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이드라고 우리나라의 명철처럼 제사를 지내는 건 아니었다. 도축한 염소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배불리 먹는 것이 이드였다. 그들은 정말 다양한 염소 요리를 해주었다. 바비큐는 물론이고 찜, 전골, 탕까지 맛볼 수 있었다. 주식인 빵까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물론 요리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의 차지였다. 그녀들은 요리와 설거지는 물론 집안 청소까지 도맡았다. 이드 연휴는 그녀들의 노동이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그녀들의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었지만 친구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타협을 본 건 숯불 바비큐를 할 때 불을 지피는 것 까지는 허용해주었다.


그들로부터 정말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들은 하루에 네 번 기도했고, 삼시 세끼를 성찬처럼 먹었으며, 또 바삐 가사를 해 나갔다. 나는 어느 정도 그들의 삶의 템포에 나 자신을 맞춰가려 노력했다. 때로는 남동생과 함께 나가 동네 아이들과 골목축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았으니 챙겨 온 책을 틈틈이 읽었다. 어느 날에는 뜨거운 태양이 좋아 상의를 훌렁 벗고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네 할아버지가 내게 호통을 치며 달려와 지팡이를 휘두르며 윽박을 질렀다. 이곳은 나의 자유분방함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이슬람의 도덕률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나는 그들과 같이 지냈지만 에리쉬라는 세계에 완전히는 융화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어느 날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내게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거야?" "책에는 배울 게 많거든." "오, 나의 친구..." 그는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을 비웃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모르나 본데 이 세상에는 단 한 권의 책만이 진짜야." "그게 뭔데?" "코란이지. 네가 아무리 수 백, 수 천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코란을 한 번 읽는 것만 못 해." 나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너희 나라의 수도에는 왜 대학이 있고 도서관이 있는 거겠어? 코란에서 배우지 못하는 지식과 지혜를 인간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야."


"도시에서 배운 사람들은 모두 자본주의에 찌든 돼지들이야. 책은 인간에게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지 못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방법만 터득할 뿐이야." "그건 지식을 안 좋은 방법으로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지식은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어떤 지식이?" "지식은 법을 만들고, 정치 체제를 만들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도시를 개발하고 건물을 짓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지성의 산물이야." "그 모든 것이 정치인들을 위한 수단일 뿐이야. 그들은 우리 위에 군림한다고. 그리고 전쟁을 일삼기까지 하지. 많은 모로코 사람들이 알제리와의 전쟁에서 죽기까지 했어. 그런데도 지식이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고?"


우리의 어조는 점점 격해져 갔다. "그건 정치의 문제이지 지성의 문제가 아니야." "그러면 전쟁이 나면 지성인들은 무얼 하지? 그들은 삶에 대해 가타부타 떠들 뿐이야!" "그렇지 않아! 지성인들은 펜을 들어 시대를 비판하기도 하고 펜 대신 총을 잡고 전쟁터에 가기도 해. 네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도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군인이었고, 헤밍웨이도 1차 대전에 참전했어. 그들은 입만 살은 지식인들이 아니었어. 철학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해. 6년 전 북아프리카의 민주 혁명인 아랍의 봄도 젊은 사람들의 정치 철학과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근데 종교는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지?"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종교가, 코란이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계속해서 추궁하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일을 했어. 식당 종업원도 했고, 공사장 인부도, 청소부도 했어. 형과 내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며 학교를 다녔어. 하지만 정치는 우리 가족의 삶을 도와준 적이 없었어. 오직 신만이 우리를 지켜줄 뿐이었어. 너는 절대 이해 못 해..." 그의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논쟁을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책을 비판하는 그의 편협한 종교적 관점이 불쾌했다. 문학의 세계가 내가 꿈꾸는 곳이 아니었던가. 나의 세계를 모조리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자리를 옮겨 집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거닐며 홀로 분을 삭였다. 창으로 보니 그는 내가 떠난 방에서 카펫을 깔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도 아니었는데 하는 기도라니. 그도 내가 느꼈던 감정만큼이나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나의 논지 때문에 자신의 신성이 부정이라도 탄 것처럼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와 좁힐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생기고 만 것 같았다. 이곳은 베르베르 족의 세계였고, 이슬람의 세계였다. 엄격한 종교적 윤리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나의 논리는 이곳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를 환대해준 친구와 난데없는 신학논쟁을 하다니.


나는 집 앞에 홀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때 막내 여동생이 마당으로 나왔다. 화로의 숯불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였다. 내가 늘 도와주었던 일이었다. 나는 본능처럼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건 내 전문이지." 나는 괜찮다는 그녀에게서 성냥과 부채를 빼앗다시피 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언니들을 도와주기 위해 주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마당에서 열심히 불을 지폈다. 이윽고 노르딘의 남동생도 나와서 화로에 열심히 입김을 불며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숯을 칠하며 장난도 쳤다. 녀석도 나의 얼굴에 숯을 발랐다. 그와 장난치며 나누는 웃음 때문인지 친구도 슬슬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쭈뼛 거리며 다가온 그의 얼굴에 장난으로 숯을 발랐다. 남동생이 깔깔거리며 웃자 그는 한방 먹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장난을 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논쟁에 대해서는 서로 사과도 하지 않았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서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친구 역시 논쟁으로는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친구는 내가 책 읽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가 기도를 하고 코란을 읽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가족과 함께 먹고 자고 부대끼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들은 내가 가족의 일원이라며 그들의 성 ‘샤쿠시’까지 붙여주었다.


드디어 라밧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나와 친구에게 대추야자를 한가득 싸주셨다. 그들은 대문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언어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일주일간 함께 부대끼며 정이 들고 말았다. 나를 가족처럼 극진하게 대주었던 그들에게 나 역시 내심 마음을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베르베르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친구가 번역을 해주었다. "너는 아들이고 여긴 네 집이니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달래." 어머니도 울기 시작했고 여동생들도, 남동생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나는 라밧에서 일 년을 살았다. 먼 타지에서 힘이 들고 외로울 때,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낄 때면 나는 늘 에리쉬를 떠올렸다. 분명 답답한 세계였다. 보이지 않는 이슬람의 완고하고 보수적인 도덕률이 세상을 움켜쥐고 있었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논쟁까지 해가며 싸워보기도 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사랑이 있었다. 도시인 라밧보다는 훨씬 따뜻했다. 그것은 고향과 가족의 온도였다. 그래서일까. 종종 모로코의 추억을 회상할 때면 라밧에 있던 나는 낡은 버스에 올라타 아틀라스 산맥을 나머 에리쉬로 간다. 모로코의 가장 따뜻했던 온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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