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것에 깊이 매진한다는 것에 대하여
- 무언가에 깊이 매진한다는 것에 대하여
모로코로 떠났던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 하나 꿈만 꾼다고 꿈에 가까워질 수 없는 일이었다.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스무살의 어느 날부터, 하나의 결심을 했다. 언제 어디서나 독서하기. 그때부터였다. 스스로를 통제했다. 일어나자마자 책을 펼쳤다.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언제나 책장을 넘겼다. 군대에서는 훈련 받을 때도 전투 조끼에 책을 갖고 다녔다. 소설가가 되겠다며 찾아간 모로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로코에 정착한 지 육개월 쯤 되었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책을 읽으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햇살이 유난히 싱그러워 꽤나 기분 좋은 날이었다. 책을 읽으며 꿈을 좇기에 더할나위 없는 날이라는 생각에 발걸음도 경쾌했다. 쥐고 있던 건 니체의 <선악의 저편>으로 집을 나올 때도, 트램에서도, 정류장에 내려서 미술관으로 향하면서도 읽었다. 내게 도보 독서는 특기 중 하나다. 책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인식하고, 지형지물을 잘도 피해간다. 더군다나 익숙해진 길을 걸으며 책을 읽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코앞이 목적지였다. 그날따라 싱그러운 햇살 아래 푸른 잔디를 밟으며 미술관으로 향하고 싶었다. 인도 대신 정원을 택했다. 부드러운 잔디를 밟으니 마치 사색의 길을 걷고 있는 듯 기분이 좋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햇살 아래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책에 얼굴을 박고 그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건물을 향해 갔다. 그때였다. 무언가에 눈두덩이를 세게 얻어 맞고 말았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신음을 내뱉으며 고통에 두 손으로 눈을 감싸고 나뒹굴었다.
정원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지만, 눈이 너무나 아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마치 어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나를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거울 삼아 눈을 비춰보았다. 눈두덩이가 시퍼랬다. 눈의 초점은 흐릿했고, 연신 눈물이 흘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내게 그들은 성인 남성 팔뚝만한 굵기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하나 가리켰다.
정원에 자리잡은 커다란 나무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였다. 유독 그 나뭇가지 하나만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었다. 경쾌한 속도로 걷던 나는 바로 앞에 있던 나뭇가지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갖다 박은 것이었다. 책은 바닥에 처참하게 엎어져 있었다. 모두들 괜찮냐고 물었고, 얼른 병원에 가라고도 했다. 심지어 자기 일처럼 화를 내며 나무가지를 일행과 함께 부러뜨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너무 많은 시선에 부담스러웠다. 서둘러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며 자리를 떴다.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눈이 욱씬거리는 게 죽을 맛이었다. 병원에 가야하나 했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니 흐릿하던 시야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기능상에 문제는 없었으나 외관상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자세히 거울을 보니 시퍼런 눈두덩이에는 피맺힌 상처까지 있었다. 흉터가 생길까 걱정이 들었다. 약국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약국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경찰들에게 물으니 그들은 꽤나 걱정되는 얼굴로 길을 잘 알려주었다. 그들이 알려준대로 한참을 걸었다.
이윽고 약국이 나왔다. 약사는 눈두덩이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리고 잠시 상처를 보더니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 내가 흉터를 걱정하자 바세린만 잘 발라도 금방 나을 거라고 했다. 약을 계산하곤 약국 한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핸드폰 액정으로 얼굴을 비춰 바세린을 바르려 했다. 그는 이 모습이 애처로웠던지 가판대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 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작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니 정성스레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그리고 바세린도 손수 발라주었다.
그렇게 예정보다 훨씬 늦게 카페에 도착했다. 소설을 쓰긴 커녕 눈두덩이의 통증을 느끼며 사색에 빠졌다. 그동안 나는 책 속의 세계, 문학과 지식의 세계가 진짜 참된 세상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곳에서의 느끼는 경험과 인식들이 나를 고양시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누구보다 균형잡히고 유려한 사람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균형잡히지도, 유려하지도 못했다. 고작 눈 앞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 보지 못해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약국도 혼자 못 찾고, 연고도 혼자 못 발랐다.
어쩌면 나는 현실적인 모든 것들에서 도피한 채 책으로, 문학적인 세계로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늦게 간 대학은 졸업을 유예했다. 취직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가족도 우정도 사랑도 등한시하며 살아왔다. 의무도 책무도 내팽개쳤다. 훌륭하고 멋진 작가가 되는 것만을 제일의 목표로 여겼다. 중요하게 여긴 건 산더미처럼 쌓인 읽어야할 책들과 읽고 싶은 책들, 그리고 쓰고 싶은 소설들뿐이였다. 또다시 눈두덩이가 욱씬거렸다. 문득 오늘 있었던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전조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 번 있었던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그동안 내가 간과했던 사실은 진짜 세상은 문학이 아니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라는 것이었다. 온 정신과 열정을 문학의 세계에 투신했지만, 정작 육체는 이 세상에 있었다. 뭇 사람들에게 나의 소설이 터무니 없다거나 너무 형이상학적이라는 비평을 자주 듣곤 했었는데 그것도 다 이때문이었던 건 아닐까. 소설 역시 현실에서 괴리되어 문학적 세계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간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뭇가지에 갖다 박을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책에 얼굴을 박고 산지 햇수로 십 년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진짜 세상에도 시선을 던지며 살아가야겠고 결심했다. 졸업도, 취업도, 사랑도, 삶도, 보편적인 행복의 가치도 그저 눈 돌리고 회피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상만 추구했던 나의 이십대도 영원하진 않을테니. 이제는 문학과 현실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자. 나의 삶도, 문학도 이 경계 위에서 쌓아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눈두덩이를 얻어맞은 나는 폼을 잡고 카페에 앉아 어언 십 년만에 생각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