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 줄 알아?

이란에 억류되어 세상에 외치다

by 이우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는 으레 환상이 개재해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김종욱’을 찾아 인도에 가고, ‘비포어 선라이즈’의 낭만을 찾아 비엔나에 간다. 내가 2017년 이란을 간 것도 별반 다른 이유 없었다. 거친 세계에 몸을 던져보고 싶었다. 외교부가 여행 유의 및 자재를 선포한 나라,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 지원국이라고 비난한 나라. 역사에서 서양과 동양의 교두보가 되었던 이슬람과 페르시아의 세계. 그런 거칠고 신비한 곳이라면 나도 덩달아 터프한 남자로 거듭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새로운 나 자신을 기대하며 이란으로 향했다. 그렇다. 완전히 새로운 나였다. ‘새로운 나’는 그동안의 모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했다. 일단 소속감이라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모든 것들로부터 탈피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 누구의 아들, 회사에서의 직책, 사는 곳과 학적, 그리고 국적까지. 그 모든 것들에 구애받지 않는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었다. 아무도 아는 곳 없는, 관광객도 얼마 없는 위험한 나라에서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이슬람뿐만 아니라 고대 신화를 고스란이 간직한 페르시아의 세계. ©leewoo, 2017




용기백배해서 떠났지만, 막상 이란에 도착하니 겁부터 덜컥 났다. 이란은 생애 처음이었고, 그들의 언어도 문화도 풍습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혼자였다. 매 순간이 낯선 일 투성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하철이 여성칸과 남성 칸으로 나누어진 줄도 모르고 여자 칸에 올라탔다. 주위 여자들이 킥킥 웃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대편 남성 칸에서도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 역시 모두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진까지 찍으며 폭소했다. 얼굴이 뜨거웠다.


아,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여. 사실 나는 이방에서 거친 남자는커녕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모르는 건 배우면 된다. 배우고 익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비웃음 속에서 상실했던 자존감은 그렇게 회복하고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방인이 바보가 되는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뒤였다. 또다시 지하철에서였다. 갑자기 젊은 경찰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여권이 숙소에 있다고 하자 그는 인상을 쓰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잠시 후 나는 파출소에 앉아 있었다.



이슬람뿐만 아니라 고대 신화를 고스란이 간직한 페르시아의 세계. ©leewoo, 2017



나는 난데없이 취조를 당했다. “호텔 웨얼?” “와이 컴 이란?” 어차피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는 계속 묻고 또 물었다. 그것도 모자라 소지품 검사까지 했다. 하나하나 뒤지는데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계속해서 왜, 어떤 이유로 나를 연행한 거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저 수수방관할 뿐이었다. 그는 취조와 검사가 끝난 뒤에도 나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때의 기분이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존감은 물론 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이 짓밟힌 기분이었다.


마치 나약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릴 때야 억울한 일을 겪으면 엉엉 울며 아빠 엄마한테 이르면 만사가 해결되었다. 사실 해결된다기보단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덩달아 화를 내고 곧바로 공감해주는 그들 덕분에 다시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억류돼서 부모님에게 전화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걱정만 안겨드릴 터였다. 억울하고, 슬프고, 이가 갈렸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티브이를 보며 네까짓 게 전화를 해봤자지, 하는 눈초리로 콧방귀만 뀌었다. 전화를 건 곳은 주 이란 한국 대사관이었다. 한국말로 따스하게 자초지종을 묻는 대사관 직원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금 경찰서에 왜 연행한 건지도 모르겠고, 어디에서 지내는지, 왜 왔는지 설명했지만 직원은 도무지 대답에는 관심도 없다고. 그리고 왜 억류된 건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마치 엄마에게 일러바치듯 다 이야기했다.


직원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냐고 덩달아 화를 냈다. 그는 해당 직원을 바꿔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그는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했다. 거만했던 그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전화는 계속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해졌다. 계급을 타고 상관에게 가는 듯 보였다. 전화는 결국 서 안쪽 개인 사무실에 있던 파출소장에게 까지 갔다. 직원들은 이제 긴장한 채 모두 일어서 있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스레 어깨가 점점 올라가는 것 같았다.



테헤란의 어지러운 밤거리. ©leewoo, 2017




서장은 수화기 너머의 존재와 잠시 통화를 하더니 전화를 건넸다. 대사관 직원이 내게 말했다. 많이 놀랐을 텐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해당 경찰이 월권 남용을 한 상황이니 서장까지 정중하게 사과를 하기로 했다고 화를 풀라고 했다.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정말 서장과 직원은 내 앞에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나는 의기양양해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구구절절한 항의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 자식들아,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어?” 서장을 필두로 직원들이 다시 한번 사과했다.


파출소에서 나오는 길, 마음이 무척이나 든든했다. 조국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애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그동안 조국은 내게 무척이나 피상적인 개념이었다. 그렇다고 애국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 안 되는 자격증 중 하나가 ‘한국사 1급’인 데다 애국가를 들을 때 가슴이 뭉클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저 조국이라는 것이 내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개념으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국이 선뜻 나서서 내게 어린 시절의 부모님처럼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실망감도 들었다. 먼 이방에서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잠시나마 잊어보자고 했던 소속감을 붙잡은 채 매달리고 말았다. 해당 경찰관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세상의 화신이 되어 내게 물은 셈이었다. “넌 누구냐?”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고자 했던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등 뒤에 대한민국이 있음을 알고서야 나를 받아들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소속감은 탈피할 수 없는 하나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사실 그동안 홀로 수많은 이방을 모험하며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어보고자 했다. 그렇게 여행하기를 십 년, 그 속에서 분명 짙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짙어지던 '그것'은 세상 앞에서 사실 너무나 나약했다. 그 까닭은 전제가 잘 못 설정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소속감은 결코 탈피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었다.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부정할 수 없는 전제와 부인할 수 없는 존재와의 화해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이란의 파출소로부터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전제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고자.





leewoo_iran_portrait.jpg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leewo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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