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고향에서 크눌프를 만나다
문학에 그야말로 도취되어 지냈던 스물아홉의 어느 날, 나는 동경하는 작가와 사상가를 찾아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만나고자 했던 이들은 이미 모두 한 세기보다 훨씬 전에 죽어 이 세상에 없었지만, 나는 그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들은 내게 은사였다. 아니, 은사라기보다는 문학적 사상적 조상 정도였다. 나의 조상의 계보를 살펴보자면 헤르만 헤세로부터 시작해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볼프 강 괴테로 이어져있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독일은 나의 정신적 고향인 셈이었다. 나는 고향에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듯 가장 먼저 헤세부터 찾아갔다.
헤세는 어떤 작가인가. 예술가는 시선이 세상으로 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사람이 있다. 후자는 전자보다 자의식과 자기애가 무척이나 강하다. 헤세가 바로 후자에 속하는 예술가이자 소설가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격동기였다.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니체의 허무주의로부터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기독교와 기성 체제에 대한 부정이 시작되었고, 이는 마르크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탄생시켰다. 영토뿐만 아니라 사상계도 파괴되고 격변하고 있었다.
격동의 시대에 몸을 투신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을 지키고자 은둔하는 자도 있다. 헤세는 후자였다. 오히려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다. 그는 구스타프 칼 융과 교류하며 꿈과 상징, 무의식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되었다. 개인적 해탈에 목표를 두고 탐구하듯 불교에 투신하기도 한다. 그의 일생은 세상에서의 부적응의 역사이며, 그 속에서 자기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이상적 인간에 대한 탐구와 모색, 그리고 그러한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소설은 하나같이 이러한 그의 삶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
그의 젊은 시절 작품들은 하나같이 고독과 방황, 선과 악에 대한 신앙적 갈등, 자아와 영혼의 모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의 작품들은 무척이나 전위적 위고 투쟁적이다. 그 유명한 『데미안』이 이에 속한다. 뜨겁기에 진리나 해답을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시도를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해답에 가까운 방향성이 담겨있는 것은 노년 작품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뿐이다. 때문에 나는 헤세를 꿈과 무의식, 지식과 예술, 시대와 인간 사이에서 자기를 찾으려 한 예술가이자 소설가로 정의하고 싶다.
나는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가련한 촛불을 지키려는 듯, 자신을 지키고 찾으려 한 헤세를 동경했다. 그는 이십 대 시절 나의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그의 저작들을 모조리 읽었고 또 읽었다. 이제는 그를 찾아 나설 차례였다. 그의 유년시절의 자취부터 찾아보고 싶었다. 독일에 위치한 칼브 Calw로 향했다. 조그마한 시내가 흐르는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한 시간도 안 돼 마을을 모두 둘러보았다. 그의 초기작인 『수레바퀴 아래서』와 『크눌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눈으로 그려졌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피해 그가 신앙과 불신을 키웠을 성당으로 향했다.
어두운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반주 없이 오른손으로만 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그는 왼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인기척을 느끼더니 눈인사를 하며 계속해서 연주를 했다. 나는 가만히 듣다가 연주가 끝나자 작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는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사제들이 앉았을 제단 한편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노년에 가까운 독일인 아저씨였다. 내가 헤세의 자취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나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 역시 헤세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나는 헤세의 어떤 작품을 읽었냐고 물었다. 그는『크눌프』만을 읽었다고 했다. 고작 한 작품만 읽고 좋아한다고 하다니,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도 크눌프를 읽었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니 그가 흥미로웠다. 크눌프는 헤세의 방랑벽이 투사된 작품으로,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을 떠돌며 방황을 하는 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에는 젊음의 빛 때문에 방황을 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만, 점점 주름이 생기고 늙어가며 빛을, 그리고 세상으로부터의 사랑도 잃게 된다. 영원할 것 같던 아름다운 젊음과 방황은 결국 주인공이 객사하며 끝이 나게 된다.
“나는 크눌프야. 크눌프가 바로 나야. 크눌프라고 부르게.” 내가 이름을 묻자 그가 말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크눌프는 세상을 방황하다 객사하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조금씩 묻자 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된 자신의 방황부터 미국에서의 방황 이야기, 쓰고 있던 카우보이 모자에 얽힌 텍사스 방황 이야기,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이야기,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홀로 떠돌며 살아가는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비가 그쳤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우중충한 성당이 아닌 햇살 속에서 그를 마주하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운 성당 안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는 이가 고작 앞니가 두 개 밖에 없었다. 머리부터 수염까지 백발이 성성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지 다리를 절었다. 차림은 후줄근하기 짝이 없었다. 막대기에는 작은 봇짐을 매달고 있었다. 하지만 미소는 누구보다 밝았다. 영락없는 크눌프였다. 크눌프가 죽지 않고 노년이 되고 말았다! 아, 당신은 크눌프의 비극을 모르는 건가요! 어째서 크눌프 밖에 읽지 못했던가요! 당신은 더 많이 읽고 크눌프가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그와 작별인사를 했다. 성당 입구의 벤치에 앉아 작아져가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째서 당신은 크눌프에 갇히고 말았단 말입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헤세,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젊은 날의 문학적 초상이 한 인간을 이렇게 병들게 하고 말았답니다! 당신은 책 말머리에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어야 합니다. ‘함부로 따라 하지 말 것’ 나는 문학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제야 깨닫고 말았다. 문학은 사상적으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모택동의 붉은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문화 대혁명에 투신해 중국을 파괴하던 홍위병들을 떠올려보자. 때문에 억압적인 정부일 수록 문학을 이용하고 검열했다.
나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정말 엉엉 울었다. 철부지 같이 해맑던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나의 모습만 같아서. 나는 그 시절 이미 수 백 권의 문학작품을 읽었고, 나름의 혜안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문학의 탐미자가 아니라 문학가라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보다 수 백 권의 책을 더 읽고 삶의 관록이 훨씬 깊은 이가 본다면 나 또한 '크눌프'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온갖 문학 작품의 메타포에 갖혀 있었기에.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어느 소설 속 주인공과 혼동한 적은 없지 않았던가.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막 여정은 시작되었을 뿐이었고, 나는 크눌프가 아닌 나만의 무언가가 되고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