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를 휩쓴 기생충에 부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쥐었다. 무려 작품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 감독상까지 기생충의 것이었다. 오늘 하루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기생충과 봉준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연이어 특보가 나왔다. 공중파뿐만이 아니었다. SNS는 온통 수상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톱뉴스도 세계를 공포에 떨게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기생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봉준호 감독에게 축전을 보냈다.
전 국민의 환호 속에서 나 역시 기뻐했다. 손에 쥔 스마트폰 액정을 통해 수상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 재생했다. 무엇 때문에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기뻐했던 것일까. 나의 기쁨을 분석해보자면 그것은 첫째, 분위기 때문이었다. 기생충의 수상은 손흥민이 골을 넣고,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고,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작품의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두 번째는 보다 개인적인 것이었다.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는 수상 소감에서 어린 시절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을 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며 그것을 읊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리곤 이 인용문의 출처가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임을 밝힌다. 이 말을 듣자 노년의 스콜세지는 아이처럼 미소와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봉준호를 바라보며 기뻐했고 객석에서는 한 시대의 거장과 새로 등극한 거장의 예술적 우정을 축하하며 기립박수를 쳤다.
내가 수 십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것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고, 가슴이 벅찼으며, 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 감정에는 작품에 대한 애착은 없었다. 복받쳤던 것은 예술가 사이에서 일어난 영감의 격세유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두 예술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나고 자랐다. 예술학도는 선배 예술가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했고 체득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그 언어를 통해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스카라는 예술적 언어만 통용되는 곳에서 자신들이 같은 언어를 쓴 다는 것을 알았다. 봉준호는 영광을 돌렸고, 스콜세지는 상을 받은 것 못지않게 감격에 젖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란 말인가. 시대가 시대에게 영감을 준 것이었다. 이 영감은 이질적인 두 문화라는, 불연속적인 시대라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피상적인’ 경계를 무너뜨렸다.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영화, 그것도 한글이라는 이방의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오스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예술로 하나가 되었다. 이 순간을 세계가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스콜세지의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며 동시에 가장 세계적이고 시대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감의 힘은, 예술의 파장은 실로 위대했다.
세계인이 기생충에 주목한다. 하지만 기생충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그리 ‘호’가 아니었다. 불편하고 찝찝했다. 내게 기생충은 현시대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계층, 암묵적 하이어리키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반도에서 노비제도가 폐지된 건 갑오개혁, 벌써 126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암묵속의 노비는 존재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스스로를 ‘노비’라고 지칭하는 직장인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시키는 대로 노동하며 보수를 받는 직장인들. 로또 한 장을 매주 손에 쥐며 자신은 건물주가 꿈이라고 한다. 노비제도를 DNA에 보전한 채, 저 먼 옛날처럼 막연하게 대지주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은 술자리에서 가감 없이 드러나던 나와 친구들, 아니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18세기, 루소는 천부인권 사상을 주창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그의 사상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혁명의 열기로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되어 기독교도 실현하지 못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다. 루소로부터 격동의 사회실험에 이르기까지 어언 3세기가 지났다. 과연 오늘날의 인간은 평등한가.
얼마 전 결혼해 세종에 정착한 누이를 만나고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누이로부터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은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새 아이들은 친구들을 놀릴 때 ‘휴거지’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휴먼시아’ 아파트에 사는 애들을 ‘거지’라고 놀린다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내게 누이는 또 다른 충격적인 말을 전해주었다. 공무원들이 대부분인 세종신도시에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계급’을 부모님의 공무원 직급으로 나눈다고 했다. 5급은 5급끼리 뭉쳐 7급을, 7급은 7급끼리 뭉쳐 9급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아이들의 의식은 그들로부터 자라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일까?
조금만 갑질을 해도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그럴 때마다 모두들 정의 구현이라고 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천부인권에 기초하고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계급구조에 대한 반발심 인지도 모른다.
기생충의 극 중에서 무척이나 부유한 이선균과 조여정은 송강호와 그의 가족을 대할 때 은연중 악취를 느끼는 듯 킁킁거린다. 가난의 냄새를 느낀 것이다. 그럼에도 송강호의 온 가족은 어떻게든 이선균의 가족의 ‘직원’이 되어 일한다. 이선균은 계속해서 가난의 냄새를 육감적으로 감지하고는 불쾌함에 킁킁거린다. 이 킁킁거림이 계속될 때마다 계급의식, 인간을 구분 짓는 ‘보이지 않는 선’은 점점 그 정체를 드러낸다. 이선균은 그래도 송강호가 이 ‘선’을 넘지 않아서 좋다고 조여정에게 말한다. 하지만 킁킁거림은 계속되고 선은 이미 눈 앞에 명확히 그어져있다. 마침내 면전에 대고 킁킁거리는 이선균에게 분노를 느낀 송강호는 선을 넘고 만다. 흉기를 꼬나 쥐고 이선균에게 달려간다.
기생충은 작금의 한반도의 보이지 않는 하이어리키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스스로를 노비라고 일컫는 우리의 자조 섞인 목소리처럼, 슬픈데 우습기만하다. 기생충 팬들 사이에서는 극 중 박소담이 이선균 집의 가정교사로 취업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 일명 ‘제시카 송’이 인기라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어딘가에 내보여야만 하는, 어떻게든 쥐어짜 낸 이력서를 들고 있는 우리 동년배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우리들의 노동요인 것만 같아 웃기고 슬프다.
송강호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을 세상 어디에든 가난한 자와 부자가 있기 때문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기생충은 ‘기생’이 아니라 ‘공생’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제목인 ‘기생충’은 누군가를 암시하고 있다. 누가 기생충이던가. 모두들 알고 있다. 기생충은 한반도를 너머 예술의 언어를 통해, 봉준호의 표현대로 ‘자막의 장벽’ 넘어서까지 사람들에게도 내리 꽂혔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예술의 언어에는 바벨탑이 없다. 전 세계 사람들이 기생충을 자신들의 세계로 가져와, 또 자신들을 투영해 바라보고 있다. 한반도의 기생충은 강인한 외래종처럼 먼 이방에서도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사람들의 불편한 곳을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하고 긁어주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기생충이 불쾌했다는 것은 그 본질을 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의 참된 목적은 현상의 ‘진단’이 아닌 ‘제시'이니 말이다. 이것은 본디 예술의 의미가 제대로 발현된 상태이다. <가디언>지도 기생충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대립적인 계급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한 개인적인 것에서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된, 그래서 세계적이며 시대적이 된 기생충은 이제 어떻게 세상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어쩌면 먼 훗날의 학교에서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시대상을 보여줄 때 기생충을 시청각 사료로 이용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