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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Mar 11. 2020

유년에 머물게 하는 친구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이야기했던 우리의 우정

내겐 조금 새로운 친구들이 있다. 흔히들 친구를 어떤 범주로 나누곤 한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혹은 같은 모임에서 만난 친구. 굳이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나누자면 ‘여행 친구’라고 해야겠다. 그들은 모두 외국에서 여행하며, 거주하며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다. 친해진 계기도 참으로 다양하다. 한 달 동안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트램에서 서로 같은 작가의 책을 읽는 걸 발견하곤, 해안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같은 숙소에 머물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친해졌다. 우연하게 이어진 그들과의 인연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탈리아 친구는 언젠가 이탈리아에 살며 글을 써보는 게 꿈이라는 내게 당장 그렇게 하라며 초대를 했다. 밀라노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두 달 동안 글을 쓰며 지냈다. 포르투갈에서 반나절 동안 함께 여행했던 독일 친구는 모로코에 살고 있던 나와 이야기를 더 나누어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그와 사흘을 함께 여행했다. 그리스인 친구는 에게해를 바라보는 자신의 별장에 나를 일주일이나 초대했다. 헝가리 친구는 내가 네덜란드를 여행한다는 소식을 듣곤 이튿날 휴가를 내서 찾아왔다. 스페인 친구는 모로코에서 홀로 살고 있던 나를 마드리드로 초대했다. 그의 가족과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다. 모로코 친구는 자신에 집에 초대하곤 키우던 양을 손수 잡아주었다.


지금도 그들과 왕래한다. 내년에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밀라노에 가기로 했다. 스페인 친구와는 함께 한 달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프랑스 친구와는 한 달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한다. 이따금씩 생각해보곤 한다. 어떻게 그들과 이토록 친해질 수 있었을까? 그들과 보냈던 시간은 짧게는 하루 이틀이었고, 길게는 육 개월이었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구들과의 시간과 비교하면 한 없이 짧다. 우리를 이어주는 건 학연 같은 소속감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우리의 우정을 고찰해보았다. 나는 그 이유를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언어’를 썼던 것이다.


우리의 공통 언어는 영어였다. 그것이 우리를 둘도 없는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국어가 따로 있었다. 한국어였고, 이탈리아어였고, 프랑스어였고, 스페인어였고, 그리스어였고, 아랍어였다. 우리에게 영어는 제2의 언어, 외국어였다. 모국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게는 무척이나 정교한 표현 도구이다. 모국어에는 동시대적인 문화와 정서, 관습과 유머가 정교하게 깃들여있다. 가령 ‘밥 한번 먹자’라는 관용적인 한국의 인사법을 이탈리아 친구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아랍인들은 약속 시간을 정하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인샤알라.’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나오겠다는 건지 나오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적이 달랐던 우리는 모국어 대신 영어를 썼다. 게다가 나의 영어 실력은 좋지 않다. 여행을 하며 습득한 영어라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이내 한계에 봉착한다. 최대한 명료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숨기거나, 행여나 속마음을 들킬까, 치부를 드러낼까 빙빙 돌려 이야기하지 않는다. “넌 참 좋은 친구야.” “나는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어.” “나는 이게 콤플렉스야.” “다음에도 너와 함께 여행하고 싶어.” 한없이 솔직해진다. 마치 7-8세의 어린아이처럼 이야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친구들도 영어 실력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나 나아 내게 맞췄다. 그래서 우리는 순수했다.


영어를 통해 우리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치부도 드러냈다.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바이로 취업한 모로코 친구는 자신의 고충과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감격에 대해 내게 한참이나 이야기했다. 여자 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는 이탈리아 친구는 내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결심한 프랑스 친구는 처음으로 작은 거처를 구했다며 화상통화를 걸었다. 나도 그들에게 전한다. 가족들에게도 차마 할 수 없던 이야기. 출판을 하며 눈물겹고 비참했던 일화들을, 사랑의 아픔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모국어의 세계에서 지칠 때면 나는 친구들을 찾는다. 형편없는 영어로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체면도 차리지 않고, 젠체도 하지 않는다. 영어 덕분일까, 친구들 덕분일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은 유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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