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작가로서 세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은 장편소설이었고, 두 번째 책은 에세이집이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장르인 시집이다. 사실 시집 출간은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의 출간은 철저하게 출간을 의도한 집필이었지만 시집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과 에세이들보다 근원적인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것도, 시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부단하게 시를 남기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일념 하에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에서 일 년을 살았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어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이란을 홀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경험하고 읽고 쓰는 것에 헌신했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늦은 새벽,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다가 불현듯 시를 써야겠다는 욕망이 일었다. 그건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싶은 절박한 감정이었다. (아래, 그날 집필한 시)
새벽, 멈춰버린 시곗바늘
어둠이 찾아온 고요한 운동장
외로이 홀로 선 기억의 가로등
축구 골대도, 철봉도, 담장도
기다란 시곗바늘을 드리운다
멈춰버린 회색의 바늘
굳어버린 시간의 흐름
지금이 몇 시지?
과거는 되살아나고
상처는 선명해진다
지금이 몇 시지?
정지한 손목시계는
‘영원’을 가리킨다
이제 이 시간은 영원히 찾아올 것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법이니
그날부터 꾸준하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건 처절하고 절박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커다란 위안이었고, 충분한 자족이었다. 시로써 가슴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소하는 것만 같았다. 일상을 할애해 조금씩 은밀하게 해오던 일들이 쌓여 어느덧 내 곁에는 수북한 원고가 쌓여 있었다. 매일 쌓여가는 원고를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것을 하나로 엮고 싶어 졌다. 그렇게 81편의 시를 추렸고, 시집 『경계에서』를 구상하게 되었다.
디자인을 직접 도맡았다. 집필은 저자로서의 '나'였다면, 디자인은 디자이너로서의 '나'였다. 총 2가지 디자인을 만들었다. 1안은 차분한 이미지의 시집이었다. 심플하게 펜 드로잉을 이용해 디자인을 했다. 사실 이 디자인은 한국의 정형적인 시집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모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를 참고했다. 하지만 1안의 경우 시집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만 너무 '그것'을 떠올리고 조금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느낌이라 새로운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2안은 보다 세련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키워드는 '경쾌함', '싱그러움', '힙'이었다. 1안의 드로잉을 작업해주신 화가(he9ine)님과 재차 작업을 했다. 1안의 컬러인 그린과 베이지는 메인 컬러로 살리되 쨍한 느낌의 오렌지 색을 추가했다. 화가님과 미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안을 검토했다. 몇 번의 초안을 주고받았고 조율했다. 그렇게 완성된 일러스트로 다시 2안이 완성되었다. 어리숙한 젊음과 치기가 묻어있는 시집을 잘 대변하는 디자인이어서 1안보다 마음에 들었다.
뜨거운 8월에 책이 나올 예정이다. 출간 즈음에서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되는 북페어 행사인 퍼블리셔스테이블에 참가하게 되었다. 출간과 북페어를 겸해서 다양한 굿즈도 준비해보았다. 첫 번째는 1안의 일러스트로 제작한 성냥이다. 레트로 한 무드를 살렸고, 양초나 인센스에 불을 붙일 때 쓰면 낭만적일 성냥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북 파우치이다. 화가님과 제작한 서브 일러스트를 새겨 넣은 북 파우치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다용도 파우치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엽서인데 북커버와 서브 일러스트를 담았다.
이제 열심히 퇴고하는 일이 남았다. 홍보도 빼놓을 수 없겠다. 비주류 작가인 나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책을 홍보해야 독자를 만날 수 있다. 그간 디자이너였다면 이제는 외판원이 돼야 할 차례이다. 텀블벅에서 다양한 굿즈와 함께 독자를 만나보려 한다. 출간에 이어 참가하는 북페어에서도 열심히 독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출간을 맞아 작가로서 두 번째 북토크도 가져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작가이자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이자 외판원인 나는 아마 세상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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