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안타이오스

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첫 번째 이야기.

by 이우

나의 책상 맡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다. 화분에는 한 뼘 남짓한 높이의 금전초가 자라고 있었다. 흙이 푸석푸석 메마를 때 물 주는 것 외에 어떤 정성도 들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이 금전초가 하나의 사물로 느껴졌다.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머무르는 초록색 사물 말이다. 일 년 반 정도 제자리를 지켰을까. 기분전환을 하고 싶던 나는 금전초를 다른 자리로 옮기기로 했다. 시간을 내어 꽃집에 들렀고 크기가 제법 큰 화분을 구입했다. 화분에 마사토를 깔고 상토를 더해 금전초를 이식했다. 화분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자리를 옮긴 금전초는 무섭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초록빛 싱그러움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착각과는 달리 금전초가 사물이 아닌 식물이었다는 사실을. 의아했다. 어째서 책상 위에 있을 때랑 이리도 다른 것일까. 물을 자주 주는 것도 아니었고, 영양제를 준 것도 아니었다. 딱 예전에 했던 것만큼의 손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저 한 거라곤 화분을 바꿔주고, 책상으로부터 1미터 남짓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준 것뿐이었다. 오직 그뿐이었는데 금전초는 마치 죽순처럼 쑥쑥 자라났다. 단순히 이식과 자리의 이동이 금전초의 봄날을 가저온 것이었다.


나도 금전초처럼 싱그럽게 자라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사물로만 느껴지던 이전의 금전초처럼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 억눌려 있고, 생기가 없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제 나도 대지를 바꿔야 할 차례인지 몰랐다. 그렇다면 내게 맞는 토양은 어디일까. 얼추 알고 있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어떤 대지가 나를 자라나고 꽃 피우게 했고, 또 어떤 대지가 나를 지치고 병들게 했는지를.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순수했고, 가장 싱그러웠으며, 가장 겸허하고 또 꾸미지 않았던 시절. 그래서 가장 나다웠던 시기는 언제였는지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순례길이었다.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짐만을 배낭 하나에 욱여넣은 채 순례길을 걸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태양은 치부마저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강렬했다. 저 먼 옛날부터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만든 투박한 오솔길을 땀 흘리며 남루하게 걸었다. 오직 하나의 목적지, 산타아고만을 향해 걸었다. 지평선은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멀어져 갔지만 저 너머에 산티아고가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겸허하게 걷고 또 걸었다. 남루해질수록 겸허해져 갔다. 겸허해질수록 순수해져 갔다. 순수해질수록 정제되어 갔다. 길 위에서 나는 환원되고 있었다. 이 세상 유일한 존재인 나 자신으로.


그래서 두 번이나 순례길을 완주했다. 그렇다고 진리를 깨우친 건 아니었다. 거창하게 스스로를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인 그간 생에서 축적한 실수와 후회와 상처들과 그것들의 유기적 관계를 어렴풋이 파악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아챈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생에서 내가 절박하게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강렬한 목적의식을 느꼈다. 그건 하나의 이정표였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저 너머의 세계에는 꿈이 있었고, 우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두 번의 순례 끝에 나는 순례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정표를 따라 하염없이 나아가는.


하지만 계속해서 순례자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삶의 곳곳에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불가항력적인 일도 산재했다. 경제적인 문제가 장벽처럼 길을 가로막고, 현실적인 문제가 당장의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인간관계의 충돌이, 사랑과 이별의 반복이, 불신과 의심의 싹이 순례를 지치게 만든다. 우울과 권태가, 피로와 무기력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다. 보편타당의 신성으로 세례를 받은 세상의 잣대는 이 길이 틀렸으며 자신이 정해놓은 평탄한 길로 돌아가라고 경광등을 흔든다. 보이지 않는 이정표는 점점 희미해져 감각하기 조차 힘들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안타이오스가 된 것만 같다.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의 대지에 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다만 축복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으니 두 발을 대지에서 떼게 되면 끓어 넘치던 힘을 잃게 되었다. 그와 겨루던 헤라클레스도 그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집어던져도 안타이오스는 다시 대지로부터 기운을 얻어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그들은 승부를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이오스의 비밀을 알게 된 헤라클레스는 이어진 결투에 승부수를 띄운다. 안타이오스가 대지로부터 힘을 받을 수 없게 번쩍 들어올렸고, 힘이 쭉 빠졌을 때 허리를 꺾어 버렸다.


삶은 헤라클레스처럼 나의 약점을 알곤 번쩍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순례길에 간신히 발 붙이고 버팅기는 나는 안타이오스인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신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어찌 이길 수 있으랴. 다만 버텨볼 수는 있을 것이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천사와의 드잡이에서 끝까지 버텨 축복을 받았던 야곱처럼. 사실 나는 야곱을 좋아해서 순례길을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원이 된 성 야고보와 구약 속 인물인 야곱을 혼동한 탓이었다. 나의 순례길은 야곱의 길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안타이오스가 가아라를 찾듯, 다시 한번 나의 순례를 되짚어보려 한다. 그리고 야곱처럼 우직하게 버티며 안타이오스처럼 두 발로 이 길을 걸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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