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두 번째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여아만 했다. 산티아고 순례가 시작되는 리스본*에는 반드시 야간열차로 도착하고 싶었다. 그것은 야간열차에 갖고 있던 낭만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야간열차를 마주했던 건 스물한 살의 어느 날이었다. 홀로 유럽을 여행하기 위해 유레일 패스를 끊었다. 이것은 일종의 유럽 대륙의 열차 자유 이용권* 같은 개념이었다. 여행자에게 야간열차는 객실에서 잠을 청할 수 있기에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이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침대에 몸을 뉘어 잠을 청했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장소에서 아침을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마법 같은 느낌이 좋았다.
처음 야간열차를 마주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에서는 전혀 마주할 수 없는 형태의 객실이기 때문이었다. 열차에 올라타면 한쪽 창가에는 긴 복도가 이어져있다. 열차 칸에 따라 좌측이 복도인 곳도, 우측이 복도인 곳도 있다. 복도를 따라 차창 맞은편에는 문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문을 열면 객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이층 침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것이 '쿠페'라고 불리는 4인 객실이다. 처음으로 조심스레 쿠페 칸의 문을 열었을 때 영화 해리포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이렇게 생긴 열차는 마법 학교인 호그와트로 향하는 열차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영화와 다른 점은 객실에 좌석이 아닌 이층 침대가 있는 것뿐이었다. 대개 야간이 되기 전에 일층 침대는 네 명의 승객이 나란히 앉아있는 좌석으로 이용된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객실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그들은 새로운 승객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한 방에서 함께 밤을 보낼 사이이기에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이들 사이에 맴도는 어색함도 잠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나라로 향하는 이들에게는 다들 사연이 있었다. 가족을 만나러, 친구를 만나러, 혹은 일이 있거나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나는 이들. 나는 그들의 사연을 듣는 게 좋았다.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은 두려움이 기재해있기 마련이다. 처음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몇 겹의 유리벽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그동안 알던 것들과는 달랐다. 들려오는 언어도 달랐고, 코 끝에 전해지는 향기도 달랐으며, 사람들의 생김새와 옷차림도 달랐다. 우물 안에서 살아왔던 나는 새로운 세상 속에 동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꺼운 유리벽이 하나씩 사라질 때가 있었다. 그것은 현지인과 대화를 할 때였다. 길을 헤메는 내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준다거나, 내게 호감과 미소를 갖고 다가오는 이들. 그들 덕분에 나는 유리벽 너머의 세상에 점점 동화될 수 있었다.
야간열차 역시 유리벽을 허물어주는 공간이었다. 물론 가볍게 인사만 나눈 채 자기만의 시간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갖고 다가와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어?"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거야?" "거기에는 왜 가는데?" 솔직하게 나는 영어 회화실력이 현지 13세 정도의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여기에 있었다. 어른처럼 약점을 숨기고, 스스로를 포장하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계산하며 이야기하지 않았다. 애매한 중의적 표현에 의중을 숨기지 않았다. 가감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꿈꾸고, 왜 이곳을 여행하며, 무엇을 사랑하는지 순수하게 이야기했다.
때문에 야간열차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마치 친한 친구의 집에 있는 기분이었다. 협소한 간이침대에 누울 때면 친구의 소파에서 잠자리를 마련한 것 같았다. 조금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안락했다. 이 안락함은 분명 공간이 주는 정취였다. 누워 잠을 청할 때면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열차 소음도 여행자를 위한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본분을 일깨우는 소리였다. 덜컹덜컹. 어디론가 나아가는 존재를 위한, 나아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전경은 머지않아 마주할 꿈의 평면도 같았다. 야간열차는 꿈을 싣고 달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잠을 깨울 때도 있었다. 눈을 떠 보니 승무원이 옆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큰 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설레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온 것이었다. "여권을 보여주세요." 열차는 막 국경을 지난 것이었다. 잠을 자는 사이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이 방금 꾸었던 꿈보다 더 꿈처럼 느껴졌다. 또 누군가 잠을 깨웠다. 잠들기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승객이었다. 목적지가 달라 먼저 내려야하는 그들은 부스스 눈을 뜬 내게 속삭이듯 인사를 건넸다. "멋진 여행 하길 바랄게!" 나는 잠결에 따스한 악수를 나누었다. 때로는 눈을 드면 그들의 짧은 인사와 연락처가 적힌 쪽지가 머리맡에 놓여있기도 했다.
덕분에 잠에서 깨어 낯선 도시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 나는 한층 당당해져 있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할 용기가 온 몸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로도 야간열차의 추억은 계속해서 쌓여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로 향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백두산을 보기 위해 베이징으로부터 시작해 단동으로 향했던 열차도 모두 내게 멋진 순간들을 선사했다. 야간열차는 나의 방황과 늘 함께했다. 그래서 리스본도 야간열차로 가고 싶었다. 익숙한 낭만을 토대 삼아 그 위에서 순례라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러한 열망에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은 낭만적인 정취를 더해주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었던 나는 리스본의 낭만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라는 멋진 낭만을 꿈꾸며 살다 세상을 떠난 청년의 흔적을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나도 리스본에서 멋진 낭만을 꿈꾸며 살았던 프라두처럼 열정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가 리스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에게 조금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내게 리스본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여야만 했다. 야간열차라는 낭만의 세례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마드리드에 있던 나는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살 수 있는 표는 일주일 뒤에나 있었다.
순례를 일주일이나 지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순례가 끝나면 나는 북아프리카로 가야만 했다. 익숙한 낭만의 세례를 기다리다가는 모든 일정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리스본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야간'버스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낭만이 부족했다. 누울 수도 없었고 마주보고 가는 사람도 없었다. 아쉬웠다. 모험의 청사진은 분명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내려 힘차게 순례를 시작하는 거였다. 순례 역시 첫 번째 순례의 경험처럼 순조롭게 나아가는 거였다. 하지만 첫 단추는 기대와는 다르게 채워지고 말았다.
어쩌면 익숙함을 추구했던 것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호기롭게 집을 떠났지만 홀로 무언가를 도전하는 건 늘 두려운 일이다. 순례에 함께하는 이도 없었고, 조언을 들었던 적도, 선구자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의 세상에서는 내가 개척자이자 모험가였다. 새로운 도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그간의 경험, 즉 야간열차와 첫 번째 순례의 경험의 프레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멋지게 새로운 도전을 완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야간버스는 이미 리스본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새로운 모험도 점점 나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각주---
*산티아고 순례길은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프랑스길과 스페인 북부 해안길로 이어지는 일명 북부 길, 그리고 리스본으로부터 시작하는 포르투갈 길이 바로 그것이다.
*방문 국가와 여행 기간을 선택해서 자유롭게 유럽의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 다만 티켓을 구매하고 별도의 좌석 예약을 해야하며 예약비는 별도로 지불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