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유일한 순례자

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세 번째 이야기.

by 이우

처음 마주한 리스본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아니, 낭만적이긴 했다. 8월의 햇살 아래 리스본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 찬 세상의 템포와 나의 바이오 리듬이 잘 맞았다면 아마 나는 눈부신 리스본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열세 시간 동안 야간버스에 앉아 있었던 탓에 체력이 고갈이 나 있었다. 앉아서 잠을 청해 신발끈이 꽉 조일 정도로 발도 부어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피곤했다. 찬란한 빛에 가득 찬 리스본을 거닐며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얼른 쉬고 싶다. 푹 쉬고 싶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호스텔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사실 풀 짐도 없었다. 배낭을 침대 맡에 기대어 놓은 게 전부였다. 팔베개를 하고 창 밖으로 점점 선명해져 가는 리스본을 바라보았다. 지난 순례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리스본은 순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곳 같기도 했다.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였던 프랑스길은 생장 피드 포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로 마치 어느 동화책 삽화의 한 장면에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공간에는 힘이 있다. 그곳은 마을 전체가 순례의 정취로 가득 차 있어 순례자를 모험에 대한 환상에 취하게 했다. 하지만 리스본은 달랐다. 이곳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거대한 항구도시였다.


여행객이었다면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리스본 여기저기를 둘러봤을 터였다. 하지만 동선을 최소화해야 했다. 이곳에서 이틀을 머물 예정이었다. 순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리스본을 덮고 있는 주황색 지붕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정렬적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눈부신 빛깔 속에 섞이지 못했다. 리스본은 어쩐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바를 겸한 호스텔의 라운지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이런 것들이 뜨거운 리스본의 여름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푸짐한 저녁을 사 먹고 챙겨 온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고 잠을 푹 잔 것뿐이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해안가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챙겨 먹곤 리스본 대성당으로 향했다.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생장 피드 포르에는 순례자 사무소가 따로 있어 그곳에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스본은 엄연한 순례길의 출발지임에도 순례자 사무소가 없었다. 이것은 순례자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대성당 한편에는 성당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순례자 여권을 물으니 종이 장부를 꺼내 보여주었다. "여기에 출발 날짜와 이름을 적어주세요." 이튿날 날짜로 기입을 했다. 명부에 같은 날 출발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고, 같은 달 출발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다.


포르투갈 길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출발하는 프랑스길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현재 리스본에 순례자는 나 하나뿐인 셈이었다. 지난 순례의 경험은 나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순례자는 머나먼 목적지를 향해 부단하게 나아가는 존재이다. 순례는 아직 하루가 남았지만, 순례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여권을 손에 쥐자 벌써부터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때문인지 눈부신 리스본과 그 속을 거니는 사람들은 나와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존재 같았다. 점점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괴리되고 있었다. 리스본에 유일한 순례자는 어디에서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철저하게 혼자였던 나는 벌써부터 리스본과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젊음이 느꼈던 방황에의 추동도 이러한 종류의 감정이었다. 나는 늘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극심한 부조화를 느꼈다. 나의 중요한 가치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했고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설득력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꿈을 간직하고,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찾아보고 싶었다. 홀로 여러 나라를 떠돌았고, 순례길의 경험도 한 번에 만족하지 못해 다시 길 위에 섰다. 이것은 어쩌면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를 배척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등져버린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넌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을 듣기 전에 "난 너희와 어울리지 않아."하고 먼저 그곳을 떠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자발적 추방’이라고 진단했다. 세상의 외톨이가 되느니 모험을 떠나는 게 낫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갈망하고 모색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이해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찾아 지금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호스텔로 돌아오자 직원이 라운지에서 파티를 한다며 초대를 했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른 새벽, 길을 나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되도록 해가 내리쬐는 오후에 걷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호스텔 전체에 울려 퍼졌지만, 나는 좀처럼 뜨거운 열기에 융화될 수 없었다. "난 너희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순례의 준비를 마치고 니체를 읽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챙겨 나가려다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안 내려가?" "나는 내일 순례를 떠나야 해서 좀 쉬고 싶거든." 내가 배낭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운지로 가려던 그는 침대에 기대서서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순례가 뭐야?" “여기 리스본부터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두 발로 걸어가는 거야.” 나는 순례가 두 번째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걸 두 번째 하는 거라고? 산티아고에는 뭐가 있는데?" “그곳에는 내가 있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너는 내가 여행하며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특별한 것 같아!” 그는 아예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제야 통성명을 했다. 그는 독일에서 온 크리스티안이었다. “독일이라고?” 나는 갑자기 흥분한 어조로 되물었다. 읽고 있던 니체 책을 보여주며 독일 사상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괴테로부터 니체, 헤세, 그리고 토마스 만으로 이어지는 허무주의와 초인 사상의 계보가 내가 문학적으로 이어받고 싶은 가치라고 말했다. “나는 독일의 문학적 정수를 이어받은 한국인이 될 거야. 허무주의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초인적 가치를 모색하는 그런, 영혼을 위한 소설을 쓸 거 거든!” “요즘 독일인도 너처럼 독일의 문학에 대해 깊이 아는 사람이 없을 거야. 네가 나보다 더 독일인 같은 걸?” 그는 감탄하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는 꽤나 잘 통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육 개월 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모로코로 찾아와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때 그는 해안 절벽에 함께 앉아있는 내게 말했다. "나도 언젠가 너처럼 순례를 떠나 보려고." 그는 내가 순례길을 걸은 것도 본 적 없었지만 나를 순례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본 것이라고는 이른 새벽 길을 떠나는 모습뿐이었다. 새벽 세 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있을 때 크리스티안도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문 앞까지 따라와 나를 배웅했다. "이제 나는 순례자의 이미지를 너로 기억할 것 같아! 몸 조심히 멋진 순례를 하길 바랄게.”


어둠에 잠긴 리스본은 적막했다. 자박자박 순례자의 발소리만 들렸다. 리스본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순례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해가 뜨면 나는 이곳에 없을 터였다. 오직 단 한 명 만이 나를 기억해줄 것이었다. 나의 첫출발을 배웅해준 낯선 친구. 나는 또다시 자발적 추방을 실현하고 있었다. 동화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리스본을 떠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어떤 장소를 향해서. 어쩌면 목적지는 어떤 곳이 아니라 누군가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나는 길을 떠났다. 이제 그곳 혹은 누군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사실 외로웠지만 용기를 가졌다. 적어도 나를 배웅해 준 친구에게는 멋진 순례자로 기억되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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