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이 나의 길

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네 번째 이야기.

by 이우

나는 순례길에 대한 확고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건 지난 프랑스 길을 통해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산과 들을 가로질러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는 작은 오솔길. 순례자는 지평선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된다. 간혹 갈림길이 나올 때면 망설일 필요도 없다. 곳곳에 노란색 이정표가 순례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정표 덕분에 순례자는 순례자 다운 것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겸허하게 땀 흘리며 대지와 햇살과 호흡하고, 함께 걷는 순례자들과 우정을 나누고, 또 고요한 성찰의 시간에 침잠하기도 했다. 내가 경험했던 순례길은 이런 곳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길은 그 시작부터 판이했다.


리스본 대성당으로부터 시작된 순례길은 딱히 순례길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리스본의 항구를 지나 계속해서 도심을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오솔길이며 저 멀리 일렁이는 지평선, 그리고 광활한 들판은 전혀 없었다. 도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도심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게다가 이정표 조차 없었다. 갈림길이 나오면 주위를 유심히 살펴봐야 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어느 쪽이 순례길인가요?"하고 물으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순례에 관심이 전무한 것 같았다. 때문에 길을 잃기 일쑤였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프랑스 길 출신 순례자였다. 이른 새벽, 길을 나서 부단하게 걷다 보면 해가 뜰 때 즈음 작은 카페를 마주한다. 카페의 문을 열면 따뜻한 커피향으로 가득 찬 공기가 순례자를 맞이한다. 그 속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과 커피를 시켜 아침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정오 즈음에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식당에 앉아 소박한 음식으로 이루어진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저녁 즈음에는 알베르게라는 순례자 숙소에 여정을 푼다. 이곳에서 샤워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땀에 젖은 옷을 손빨래한다. 낯선 순례자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도 나눈다. 하지만 이건 프랑스 길의 이야기였다.


자꾸만 길을 잃었던 나는 결국 구글맵을 켰다. 이정표가 아닌 화면에서 구글이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갔다. 구글은 순례자가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아닌 자동차의 최단거리를 안내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인도도 없는 곳이라 아슬아슬하게 경계석을 밟고 걸었다. 제대로 된 카페는커녕 식당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배고픔에 허덕이며 걷다 이윽고 마주한 마트에 들어가 빵과 햄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끼니를 해결했다. 알베르게는 전무했다. 여정을 풀 곳 조차 마땅치 않았다. 매 순간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길을 찾고, 먹고, 마시고, 자는, 그야말로 모험가의 원초적인 문제에 온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 길의 제반 시설이 열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프랑스 길은 스페인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순례길을 정비하고, 가톨릭 재단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지인들도 적극적인 투자를 하며 길 위에 순례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업 시설들을 마련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달랐다. 오직 극소수의 순례자만 걷는 길이다 보니 모든 게 전무했다. 그래도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해 조그마한 배려를 마련해두었다. 바로 소방서에서 여정을 풀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어떤 마을의 소방서에 들어가더라도 순례자들에게는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포르투갈 길 위에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소방서의 위치뿐이었다.


순례는 두 번째였지만, 어째서인지 모든 게 처음이었다. 베테랑처럼 멋지게 순례길을 걷고 싶었지만 초짜에 불과했다. 혹자는 삶이란 경험을 쌓아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삶의 어떤 경험이 훗날 마주할 무언가의 연습 같은 거라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리하여 회사에서도 사람의 '이력'을 검토하며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아무리 경험들을 쌓아간다고 한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우리가 마주하는 일들은 늘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의 경험을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만나는 인연도, 환경도,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이나 마찬가지이다.


포르투갈은 처음이었다. 리스본의 여름도 처음이었다. 길 위의 유일한 순례자가 되어 순례를 시작한 것도 처음이었고, 구글맵을 따라 이렇게 먼 길을 걸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걷다가 차에 치어 도로변에 딱딱하게 굳은 고양이 시체를 근처 수풀 밑에 묻어준 것도 처음이었다. 소방서에서 잠을 자보는 것도, 소방관들과 같이 샤워를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온통 낯섦뿐이었다. 게다가 8월, 이베리아 반도의 태양은 너무나 뜨거웠다. 두렵고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살아있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지금 나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낯설기만 했던 이 길이 점점 정겹게 느껴졌다. 이것은 적응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익숙한 세계로의 회귀라고 하고 싶다. 이 길이 나의 문학적인 여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끌어주는 선구자도 없었고, 이정표도 없었다. 어리숙했고, 헤매기 일쑤였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나아가기만 했다. 셀 수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주 힘겹게 땅만 보며 걸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목적지는 길의 반대편에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길이었다. 아니, 오직 이것만이 나의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낯선 순례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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