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무덤과 길 위의 눈물

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일곱 번째 이야기.

by 이우

또 혼자였다. 길 위에서 순례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알한드라부터 아잠부자(Azambuja)까지 23km의 여정을 홀로 걸어야만 했다. 그래도 씩씩하게 걸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설에 대한 구상도 했고, 틈틈히 메모장을 꺼내 기록도 했다. 볏짚 위에 걸터앉아 지난밤 미리 준비해 둔 샌드위치를 꺼내 터프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목청을 높여 노래도 불렀고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모험가 다운 포즈로 셀카도 찍었다. 하지만 텅 빈 길을 혼자 걷는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보고 싶은 얼굴들과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 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럴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도 계속해서 샘솟았다. 첫 번째 순례의 경험이었던 프랑스 길을 걸을 때는 이렇게 회의적인 생각에 침잠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군중심리라 부를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길은 순례의 첫날부터 함께 걷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길 위의 가족이라 칭하며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함께했다. 그들과 함께하며 이렇다할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모두 함께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길은 벌써 삼일 째였지만 홀로 길을 걸었다. 도대체 무얼 얻고자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걷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례길에 대한 회의는 곧 나의 인생에 대한 회의이기도 했다. 이 길과 그간 나의 삶의 여정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갔던 스무살 무렵부터 조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책과 세계여행이 내 삶의 전부였다. 대학에 입학한 것은 스물여섯에서였다. 친구들이 모두 졸업을 하던 무렵이었다. 캠퍼스의 낭만을 향유하며 문학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국문과를 간 것도 아니었다. 역사학과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다. 문학은 개인적인 소양이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멋진 작품을 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걷는 친구 없이 20대를 혼자 걸었다. 마치 이 포르투갈 길처럼 말이다.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사실 길을 걸을 무렵에는 이렇다 할 소설을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문학적 치기에만 가득 차 있었다. 당시에 집필하던 소설은 나의 첫 책이기도 한 장편소설 <<레지스탕스>>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퇴고였다. 사실 이 책은 프랑스 길 위에서 탈고 한 작품이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말이 퇴고였지 순례가 끝난 저녁이면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하고 있었다. 두 차례의 순례길 위에서 <<레지스탕스>>가 탄생한 것이었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었다. 집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메모장에는 이러한 작품 구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영감들을 작품으로 치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닮은 길을 걷고 있었다. 숲을 벗어난 길은 왕복 4차선 도로로 이어져 있었다. 인도도 없어 수풀과 도로 사이의 배수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쌩쌩 지나치는 차들에 불안감을 느끼며 최대한 수풀에 밀착해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도로 위에 죽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혹시나 살아있을까 하는 마음에 등산스틱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고양이는 이미 죽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등산스틱으로도 사후경직의 느낌이 전해졌다. 갈 길이 멀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임신을 했었는지 배가 불룩하기까지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고양이를 조심스레 옮겨 수풀로 가져왔다.


삽이 없어 땅을 깊게 파지는 못했다. 그래도 등산스틱과 발과 손을 이용해 고양이가 묻힐만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조심스레 흙을 덮어 한국식 봉분을 만들어 주었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장례식을 간소화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길을 걷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양이가 너무 슬퍼서였다. 고양이가 마치 문학의 길에서 실패한 어느 젊은 문학가 같았다. 잉태한 생명을 출산하지도 못하고 죽는 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고양이처럼 내 속에 품은 사상들을 출산하지도 못한 채 문학의 꿈이 끝나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걸었다. 저 이름 모를 고양이처럼 묻혀야 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잉태한 것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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