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구스 강에 홀로

소설가 이우, 포르투갈을 종단하다. 그 여섯 번째 이야기.

by 이우

그때는 어리석게도 사랑은 장난이고 이별은 멋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으로 일 년의 해외 체류를 앞두고 있었다. 머지않아 문학에 헌신할 시대가 시작될 터였다. 나는 마치 곧 입대를 앞둔 여느 스무살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출국 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었다. 문학에 빠져 경시했던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아니 이별을 해보고 싶었다는 게 옳을 것이다. 멋진 이별을 해보고 싶었다. 문학적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빌미로 연인과 이별을 하면 멋질 것 같았다. 그런 이별을 하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별을 위한 사랑. 그것은 사랑을 소설에서 잘 못 배운 탓이었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핸드-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는 예술적 열망을 위해서 아내는 물론 자식들까지 기꺼이 버린다. 예술적 열망을 위해 모든 것을 재물로 삼는 그의 삶이 멋있어 보였다. 이게 바로 예술가의 삶이다 싶었다. 나도 그처럼 사랑을 멋지게 버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첫날 영화를 보았으며, 너무나도 빠르게 고백을 했다. 나의 조급한 속도에 그녀는 물었다.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다고. 나는 예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고 그녀가 미소 지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나는 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와 사랑을 나눌 시간은 길어도 채 다섯 달 밖에 없었다. 사랑의 유한함을 상정해 두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에게 나의 봄과 여름을 쏟아부었다. 함께 카페를 갔고, 맛집을 갔으며, 영화를 보았고, 운동을 했고, 산책을 했다. 서점에도 갔고, 나란히 앉아 책도 읽었으며,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기도 했으며, 여행을 가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가을 돼서 조금 선선해지면 우리 에버랜드에도 가요." 그녀는 나와 함께할 미래를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가을이 오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에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쉽게도 했다. "응 그러자."


사실 그녀와 함께하며 미래의 다른 방향성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달콤한 신기루 너머에는 늘 산티아고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달콤한 신기루를 향유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었고, 용기가 있었고, 따스함이 있었다. 그 모든 자양분을 흡수하며 나는 조금씩 산티아고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스트릭핸드처럼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제물로 삼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출국일이 다가왔다. 더 이상 이별을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먼 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그녀가 울며 답했다. "오빠는 사랑도 마음대로 더니 이별도 마음대로네요."


이제 모든 신기루가 걷혔고 나는 그토록 원하던 산티아고를 홀로 걷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절뚝거리며 알한드라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무렵이었다. 새벽부터 걸었으니 거의 길 위에서 열두 시간을 소비한 셈이었다. 드디어 순례자에게 숙소가 되어줄 소방서에 도착했다. 어느 소방관이 친절하게 안내해준 곳은 체력 달련실의 한 구석이었다. 이곳이 나의 잠자리였다.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저녁을 먹었다.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는 강이 보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타구스 강이라고 했다. 나는 이끌린 듯 강가로 향했다. 조그마한 선착장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강물을 바라보았다.


오직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바로 그녀였다. 이것은 극명한 대비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절뚝이며 혼자 걸었고 이렇게 홀로 강가에 앉아 있었다. 힘들고 지치고 외로웠다. 안락하고 따뜻하고 애틋한 것이 그리워졌다. 그것은 그녀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와 등가교환했던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과 맞바꾼 것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발은 물집 투성이었다. 피부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끼니도 간신히 때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에도 진심이었고, 내게도 진심이었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그녀가 와락 밀려왔다. 가슴이 먹먹해졌고 숨이 차올랐다.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뒤늦게 깨달은 나는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당신에게 속았다며 서머싯 몸을 원망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눈물을 닦고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 한구석에서 엽서를 꺼냈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고흐 미술관에서 구입한 엽서였다. 그녀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건 사랑이었음을 고백했고, 그럼에도 나는 나아갈 수밖에 없노라고 고백했다. 몸을 일으켜 선착장을 떠났다. 다음 날 새벽, 길을 나서며 처음으로 마주한 우체통에 엽서를 넣었다. 사실 주소도 적지 않았다. 굳이 전해질 필요 없는 진심이라는 걸 알았기에. 순례자는 그렇게 타구스 강을 뒤로하고 담담하게 산티아고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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