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 Sep 19. 2021

춤추는 이등병과 깨진 유리창

이등병이었던 나는 유격 훈련에 불참하게 되었다. 유격 훈련은 하절기에 군인들이 받는 필수적인 훈련으로 그 누구도 열외는 없다. 그때는 휴가도 제한된다. 하지만 나는 이 훈련에서 열외가 되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춤을 춰야했기 때문이었다. 선임들이 끈적한 땀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한 들판과 진흙탕을 기며 훈련을 받는 동안, 나는 군복 대신 하얀 셔츠를 입고 흘러나오는 비트에 맞춰 스텝을 밟는데 온 정렬을 쏟아냈다. 이등병 시절부터 나는 선임들에게 미움과 괴롭힘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악감정을 증폭시킨 것은 바로 유격 훈련의 불참과 춤바람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격 훈련 대신 춤을 추게 된 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대대장은 부대를 캠퍼스처럼 만들겠다며 동아리 제도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아 보였지만 부대원들은 이걸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은 주말에 이루어졌고 여기에 열외란 없었다. 반드시 하나의 동아리에는 소속이 되어야 했다. 주말이 유일하게 아주 작은 자유라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것마저 동아리라는 제도에 의해 뺏기는 것이었다. 때문에 축구, 헬스, 플스, 기타, 체스 따위의 동아리가 명목적으로 생겼지만, 실상은 모여서 대충 하는 척만 하다가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동아리에도 급이 있었다. 플스나 장기처럼 생활관 내에서 하는 동아리는 선임들 차지였다. 대충 하는 시늉 해도 되는 동아리이기 때문이었다. 급이 낮은 동아리는 막내인 내가 해아 할 것이었다. 대대장은 외부에서 강사를 불러 '댄스 스포츠'라는 동아리를 신설했다. 강사까지 있는 동아리이기에 결코 하는 척만 할 수는 없는 동아리였다. 대대장의 야심이 담긴 프로젝트이기에 소대장들은 동아리원들을 모집하려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애써 귀찮은 일을 누가 자발적으로 하겠는가. 생활관이 조용한 가운데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결국 막내였던 나는 이것이 나의 몫이라는 걸 운명적으로 느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운 토요일, 부대의 널찍한 홀에서 모인 댄스 스포츠 동아리는 참 우스웠다. 나처럼 반 강제로 끌려온 이등병과 일병들뿐이었다. 강사님이 챙겨 온 카세트테이프에서는 낯선 비트가 흘러나왔다. 우리 막내들은 비트에 맞춰 차차차와 탱고, 그리고 자이브를 배웠다. 선임들은 복도를 지나가며 우리들을 보고 킥킥거리기 일쑤였다. 주말에는 나도 선임들처럼 쉬면서 책이나 읽고 싶었는데 차차차라니. 탱고라니. 자이브라니. 몸은 춤을 추고 있었지만 마음은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막내들의 슬픈 동아리에도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몇 달 뒤, 대대장은 사단장 배 동아리 발표회에 우리 동아리를 부대 대표로 선정한 것이었다.


대대장은 댄스 스포츠를 비롯한 세 개의 동아리는 유격 훈련을 열외 시켜 줄 테니 연습에 매진하라고 했다. "와,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한다고 하는 건데." 선임들은 땅을 치며 후회를 했다. 나는 그런 선임들을 뒤로하고 매일 춤을 추러 나갔다. 선임들 입장에서는 꼴 사나운 일이었다. 부대원 전부가 고된 유격 훈련을 앞두고 훈련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옥 같은 3박 4일의 유격 훈련을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는데 막내는 현란한 춤사위를 벌이고 있었다. 선임들이 완전 군장을 메고 유격 훈련장으로 떠나는 날도 우리 막내들은 나팔바지를 입고 골반을 흔들었다. "원, 투, 차차차!" 스텝을 밟으며 말이다.


선임들이 유격 훈련을 받는 동안, 우리는 사령부에서 지내며 대회를 기다렸다. 유격 훈련과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춤 연습을 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열심히 춤만 췄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무대 위에서 그동안 준비했던 춤사위를 아낌없이 펼쳤다. 무대는 우리 부대의 것이었다. 금상을 제외한 대상과 은상, 그리고 동상이 모두 우리 부대의 차지였다. 하지만 부대에 돌아오니 사령부에서 쟁취해 온 영광은 오히려 선임들의 미움이 대상이었다. "막내 때깔 좋아 보인다?" "재밌네. 다들 유격 훈련 가서 뺑이 치고 왔는데 우리 막내는 빵댕이나 흔들다가 오고."


이윽고 그들의 미움에 기름을 붓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대대장은 수상자들을 대대장실로 불러 시상식을 마련해주었다. 대상을 탄 연극 동아리는 3박 4일의 휴가를, 그리고 각각 은상과 동상을 차지한 댄스 스포츠와 다른 동아리에게는 각각 외박을 포상으로 주었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내가 손을 들었다. "혹시 대대장님께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아시는지요?" 대대장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멋진 건물에 깨진 유리창이 하나 방치되어 있음으로 인해 건물 자체가 부실한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는 사회 무질서 이론입니다." "그 이론을 왜 이야기하지?" 대대장은 궁금한 듯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우리 부대의 동아리가 각각 대상, 은상, 동상을 수상하고 왔는데, 은상과 동상에게 차등 포상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부대원들에게 오직 일등만이 인정받는다는 박탈감과 함께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며,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비단 동아리 활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군생활에서도 적용될 것입니다. 반대로 은상과 동상에 차등 포상을 해 주신다면, 병사들도 모두 제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한다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찾아올 것이라 여길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곁에 있던 간부들은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작전과장. 댄스 스포츠 동아리 전원에게 2박 3일의 휴가를 주게." 스무 명의 동아리원들은 나를 부둥켜안으며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로 인해 간부들에게까지 눈엣가시가 되고 말았다. 계급이 소령이었던 작전 과장은 자신의 집무실로 나를 불러놓고 윽박질렀다. "야. 네가 무슨 간부라도 돼? 어디서 감히 대대장님 앞에서 쇼부를 치고 있어? 너 하나 때문에 몇 명의 간부들이 일처리를 다시 해야 하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야. 사과도 하지 마. 어디 이등병 새끼가 나랑 맞먹으려고 하고 있어. 꺼져!"


외박증은 휴가증으로 바뀌었지만, 이 작은 변화의 후폭풍은 너무 거셌다. 작전 과장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너 몇 중대야!" 작전 과장은 이 사건의 문제에 대해 중대장을 질책했고, 중대장은 소대장을, 그리고 소대장은 분대장을 질책했다. 분대장은 나를 불렀다. "너 진짜 미쳤냐. 어디 건방지게 대대장님한테 쇼부를 치고 있어! 너 때문에 중대장님부터 나까지 망신만 당했어! 넌 도대체 뭘 믿고 당당한 거냐? 깨진 유리창은 외박증이 아니라 너야 너!" 그때부터 중대 선임들까지 나를 마주칠 때면 깨진 유리창이라고 불렀다. 이윽고 휴가증으로 휴가를 나갔지만,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엄청난 미움의 대가였기 때문이었다.


춤바람 사건으로 군대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깨진 유리창을 지적하는 누군가는, 되레 깨진 유리창 그 자체가 되고 만다. 깨진 유리창을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것이 세상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요령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군대 내에서의 진리만은 아니었다. 바깥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 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대대장 앞에서도 자신 있게 손을 들어 나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나를 현명하게 지키는 방법은 아니었으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존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https://www.instagram.com/leewoo.demian/







매거진의 이전글 국방의 의무를 짊어진 우리들의 상처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