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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Aug 31. 2021

국방의 의무를 짊어진 우리들의 상처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를 보고

홀로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멜로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청승맞게 나는 울고 있었다. 감동적이어서도 슬퍼서도 아니었다. 너무나 미안해서 울었다. 나를 울게 한 드라마는 바로 정해인, 구교환 주연의 <디피>였다. 이 드라마는 헌병대에서 탈영병들을 체포하는 군무 이탈 체포조(D.P)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D.P를 담당하는 정해인과 구교환은 병영이 아닌 사회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병사들과는 다른 외모를 갖고 있다.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짧은 머리가 아닌 긴 머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민간인처럼 꾸민 채, 병영을 몰래 벗어나 사회로 잠입한 군인들을 체포한다.


극 중에는 총 다섯 명의 탈영병이 등장한다. 그들을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탈영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로 인해, 후자는 내무 생활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탈영을 한다. 우선 전자의 유형을 보여주는 탈영병은 정현민 일병과 허치도 병장이다. 그들은 각각 휴가가 끝났으나 복귀하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가고, 또 불우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탈영을 했다. 이 두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명의 병사-신우석 일병, 최준목 일병, 조석복 일병은 모두 병영의 내무 부조리 때문에 탈영을 하게 된다. 후자의 유형을 탈영으로 내 몬 것은 바로 곁에 있는 전우들이었다.


드라마의 모든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탈영병은 바로 후자의 유형이다. 신우석 일병은 폭력으로 얼룩진 병영 생활의 부조리로 인해 탈영을 하지만 숨어 사는 사회 역시 부조리한 폭력으로 자신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최준목 일병도 무자비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탈영을 하지만 무기력하게 체포되고 만다. 조석복 일병은 인격모독적인 괴롭힘을 참다 못해 결국 탈영을 하고,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힌 전역자를 복수하기 위해 찾아간다. 처음에 이들은 모두가 피해자였다. 하지만 부조리를 참다 못해 병영을 벗어난 순간 탈영병이 되어 범죄자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탈영병을 사회 부적응자의 표본으로 여기곤 한다. 그들의 내밀한 동기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을 단순한 범죄자 취급을 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부터 홀로 도피하는 것은 범죄이지만, 탈영의 동기가 후자라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의 범죄라고 할 수 있을까.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살 수 있는 구멍이 그것뿐이라면 그것이 정말 범죄일까. 그리하여 정해인은 탈영을 한 조석복 일병을 향해 말한다. 자신이 군대를 바꿀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답한다. 6.25 전쟁 때 쓰던 수통도 아직도 안 바꿔주는 군대가 무얼 바꾸겠냐고. 군대는 그런 그를 체포하겠다고 실탄으로 무장한 특수부대까지 동원한다.


내가 탈영병들의 이야기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은, 지난 시절의 상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군 시절 자살 사건을 눈앞에서 두 번이나 목도했다. 내가 있었던 부대는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차 있었다. 언어폭력, 따돌림, 인격모독 등을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이어나갔고 보존해갔다.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던 후임은 그 모든 걸 견디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건 내 일생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고, 이 상처를 나는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에 수록된 단편소설 <무대는 사라졌지만>에 풀어냈다. 소설의 시공간과 설정과 인물들은 모두 실제와 다르지만, 부조리와 자살의 메타포는 내가 겪은 사건으로부터 연유했다.


나는 아직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간다. 물론 사건에 책임을 지고 영창에 간 병사는 따로 있었지만, 나는 나 역시 그를 죽음에 이르게 방관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있다. 나도 살아남아야 했기에 선임들이 내게 하는 부조리를 이를 꾹 참고 견뎠다. 물론 자살에 내가 직접적인 가해는 하지 않았지만, 부조리라는 전통이 이어지는 것을 묵묵히 방관한 셈이었다. 드라마 D.P의 마지막화 제목은 바로 '방관자들'이다. 조석복 일병을 탈영을 하도록 부추긴 방관자들인 부대원 모두가 그를 잡기 위해 그를 둘러싼다. 실탄으로 무장한 총구를 그에게 겨눈 채. 부적응자는 병영에서도 죄인이나 다름없었고, 탈영을 해서도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소설 <무대는 사라졌지만>에서 자살에 대한 책임을 모든 방관자들에게 돌린다. 부조리를 방관했던 전우들, 병사들의 부조리를 묵인했던 장교와 부사관들, 사건을 급급히 처리하기 바빴던 헌병대 수사관들에게까지 죄의식은 부가된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의 화살은 멈추지 않고 소급한다. 이 모든 사태를 조장한 책임은 군대 체제로 향하고, 다시 군대 체제로부터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두 나라로 향한다. 나는 내가 목격한 사건의 근원적인 책임 소지를 묻고 싶었다. 왜 젊은 우리가 총을 겨눈 채 곁에 있는 서로를 못 살게 굴고 있는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지 말이다.


엔딩에서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맞이한 탈영병인 신우석 일병의 여동생이 정해인에게 묻는다. 그러면 당신은 후임이었는데 부대원들의 그 모든 부조리를 보고도 왜 방관하고만 있었느냐고. 정해인은 고갤 숙인 채 미안하다고만 답한다. 탈영병들은 죄인이 되어 군법에 회부되고 죽어갔지만, 군대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던 조석복 일병의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군대에는 다시 군가가 울려 퍼졌으며, 그들의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채워나갔다. 드라마 디피는 우리가 신성의 이름으로 만든 국방의 의무에 대한 불경한 고발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고발에 조그마한 주석을 부치는 바이다.




군대의 부조리를 다룬 드라마 <디피>와 소설 <무대는 사라졌지만>이 담긴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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