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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Aug 13. 2021

마르셀 푸르스트와 인디언

넋이 나간 스스로를 추스르다

넋이 나갔다. 우리는 종종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를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한다. 요즘의 내가 그러하다. 주관을 잃고 여유를 잃어버렸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과, 스스로 세운 목적에만 얽매인 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집필을 하며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시작한 유튜브는 나의 사고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다 양질의 영상을 만들고자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하며 인기 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것만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다. 사실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있고, 또 알고리즘에 의해 사고를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스스로에게서 맑은 정신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요즘 나는 넋이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까지 한다. 스스로가 유튜브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알고리즘에 나 자신을 맞추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또래 작가들의 행보를 보며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진지한 책 리뷰보다 우스꽝스러운 만담이 더 인기가 있는 걸 보고, 내가 유튜브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이 문학인지 많은 구독자를 갖고 싶었던 건지 혼동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문을 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의 목소리는 잊은 채 타성에 젖어 넉이 나간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누구보다 빨리 가고, 새로운 걸 선점하고, 또 더 많이 소유하는 걸 미덕으로 칭송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시대가 바로미터로 정한 행복의 잣대로 스스로를 재단해보면 불행하기 짝이 없다. 나 역시 시대의 인간이기에 시대의 바로미터로부터, 템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루를 넋이 나간채 어딘가로 향해 달리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먼 곳으로 갑작스레 떠나게 되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이는 우리의 혼이 뒤따라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혼이 뒤늦게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아닌 나로 사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넋이 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프루스트의 말처럼 너무 낯선 곳으로 나를 던진 까닭일지도 모른다. 올 초, 생애 처음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나름 현명한 재테크를 해보겠다고 시작한 건데 사실 따지고 보면 주위에서 다들 한다고 하니 불안해서 시작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뒤쳐지기 싫어서 말이다. 또한 나의 사고 회로가 단순해졌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밈으로 사고하는 일이 잦아졌다. 넋이 나간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내가 되고 싶은 나도, 하고 싶은 문학도 결코 시대에 의해 일회용품처럼 빠르게 사용되는 밈이 아니다. 청운의 꿈으로 가득했던 나의 청사진은 도대체 어디 간 것일까.


요즘 자문을 하곤 한다. 나만의 언어가 있는가. 나만의 문법이 있는가. 나만의 이론이 있는가. 나만의 잣대가 있는가. 내게서 시대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나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나를 재단하는 잣대, 달려가는 방향성, 나아가는 속도. 모든 것들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목적지를 향해 말을 타고 쉼 없이 달리다가 갑자기 말에서 내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목적은 단 하나. 아직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미 자각할 줄 알았던 게 아닐까. 자신의 넋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그들처럼 잠시 멈추고 기다려보고자 한다. 넋이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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