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솟은 것에 대하여
오사카에서 출발한 신칸센은 히메지에서 정차했다. 당시 일본을 여행하던 내가 찾아다녔던 것은 다름 아닌 에도 막부와 메이지 유신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유적들이었다. 나름 역사책 한 권을 손에 쥐고 근대의 일본을 진중하게 이해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히메지에 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기차역의 물품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여행안내 센터로 향했다. 나는 여행할 때 가이드북을 챙겨가지 않는다. 여행 데스크에 가면 다 있기 때문이다. 직원은 친절하게 히메지 성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히메지 시에서는 여행객에게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하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히메지 성으로 향하였다. 매서운 겨울이었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한적하고 깔끔하게 잘 구획 지어진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하늘 높이 솟은 히메지 성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감탄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도쿄와 시즈오카, 교토, 그리고 오사카를 거치며 그동안 이미 많은 성들을 봐왔던 것이었다. 같은 이야기에 다른 형식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성을 보고 싶었다. 안내에 따라 자전거를 주차하고 도보로 성으로 향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막부시대의 성들은 일관된 건축양식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본채는 그렇게 크지 않다. 둘러싼 성벽과 해자, 그리고 성의 규모만이 클뿐이다. 본채는 그저 높은 기단 위에 4~5층 정도로 높이 세워져 있는데, 그 높은 위치가 본채를 웅장하게 보이게 해줄 뿐이었다. 본채에 들어가면 무척이나 비좁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이 살기 그리 좋은 집이 아니다. 가벼운 목조 건물에는 바람이 그대로 들이친다. 내부는 채광이 잘 되지 않아 실외보다 춥고 어둡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채는 주거공간이 아닌 ‘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내부에 이어지는 계단이 자꾸만 오르고 싶게 했던 것이다.
꼭대기 층에 올라 밖을 내다보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한눈에 감시할 수 있었다.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위치. 아무래도 막부시대의 성이란 감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닐까. 아래를 내려다봐야 한다.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은 '신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당성은 무력에 있다. 무력이 있는 누구나 그 자리를 무너뜨리고 찬탈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높이 솟은 성은 감시 목적뿐만 아니라 그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을 건축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그곳에 살고 있는 주인의 정치적 정당성을 공표하는 것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이것은 일본의 이른바 무인정권 시대인 막부 시절의 건축물뿐만이 아니다. 중세 유럽, 봉건시대의 군주의 성들은 언덕 위에 높이 솟아있다. 반면 왕과 황제, 그리고 천황이 사는 건축물은 이와는 판이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들이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곳은 그다지 높이 솟아있지 않다. 일본 천황이 거주했던 교토의 황궁도, 거주하고 있는 황궁도 막부시대의 성보다 높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태양왕이라 칭했던 루이 14세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도, 중국 대륙을 통치했던 황제가 살았던 자금성도 봉건 시대의 성들보다 높지 않다. 이유는 다름 아니다. 왕권의 정당성은 무력과 연결되지 않고, 보다 고귀한 것, 신화, 민족, 나아가 절대적 신과 연결되는 신성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굳이 높이 짓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무력으로 지배하는 권력은 채 삼대를 가지 못한다. 아무리 높은 곳에 살아도 말이다. 하지만 왕좌는 족히 오백 년은 간다.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살지만 말이다. 높이 솟은 것일수록 빨리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가시적인 높이는 언제나 정복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도 모자라, 하늘 위에 떠있는 행성들마저 정복하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념적인 높이에는 감히 대항하지 않는다. 함부로 정복하려 하지 않는다. 바벨탑의 교훈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불안한 히메지 탑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