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외로움과 공허감에 허덕일 때
연민(憐憫), 불쌍하고 가련한 마음. 우리는 살아가며 문득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티비로 전쟁 난민이나 불우 이웃들을 보게된다. 혹은 비탄에 빠진 친구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주위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우리에겐 연민의 감정이 밀려온다. 우리는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본다. 지갑을 열거나 직접 찾아가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물론 내 코가 석자라 모른척 지나칠 때도 있지만, 마음 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연민의 감정은 우리를 두고두고 찝찝하게 한다. 연민, 특히 타인에 대한 연민은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에게 느끼는 연민은 어떠할까. 나는 그저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기연민이라고 하면 나는 일본에서의 나날들이 떠오르곤 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도쿄에 살았다. 그녀를 만나러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당신을 만나러 일본에 가는 것이라 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들킬까 두려웠다. 나는 그저 일본을 여행할 계획인데 시간이 있으면 보자고 했다. 거창하게 한달동안의 일본 여행을 계획했고, 그중 일부를 그녀에게 할애했다. 그녀는 그저 나의 전부가 아닌, 거대한 계획의 일부인양 그렇게 포장을 했던 것이다.
그녀와 이틀의 시간을 보내며 어느정도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했다. 훗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지만, 그때는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스러웠고, 또 서툴렀다.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나는 계획했던 장황한 여정으로 나아가야 했다. 홀로 열차를 타고 일본 열도를 장장 한달에 걸쳐 떠돌아다녔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 숙소를 찾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홀로 마주하는 일본의 겨울은 또 어찌나 추웠던지. 스스로에게 극심한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데 타인에게 했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는 손 내밀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도와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연민 속에 스스로를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술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찾지도 않았다. 문득 참을 수 없이 지독하게 외로웠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장황한 계획 속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목적지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일본 열도를 여행했다. 물론 좋은 일도 많았다. 따스한 호의로 다가와 주었던 일본인들, 나는 아직까지 그들의 미소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길고양이와 챙겨갔던 일본 역사책은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낯선 이들과, 고양이, 그리고 독서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본 열도에서 나는 자기연민의 역치(閾値)를 느끼고 돌아왔다.
요즘들어 또다시 깊은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이제 나는 자기연민을 느낄 때면 자연스럽게 일본에서의 나날들을 향수처럼 떠올리곤 한다. 어느 열차 플랫폼에서 들려오던 단아한 목소리의 안내방송, 코끝을 스치던 겨울바람, 그럼에도 비춰오던 따스한 겨울햇살. 그곳에 홀로 서있는 나. 그 시절, 나는 일본에서 자기연민은 그저 나아가는 것이라고 터득했고, 그 처방전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손내밀지 않는다. 술을 찾지도 않는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고양이와 책을 벗삼아 그저 계획했던 목적지로 하루하루를 나아갈 뿐이다. 나는 자기연민을 극복하는 방법을 이것밖에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