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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원론 ; 야만에의 향수

인간이 갈구하는 자유에 대한 고찰

by 이우

<자유기원론 ; 야만에의 향수>



- 인간이 갈구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 자유는 어디서부터 유래하는가



DSC09296.jpg Painted by anselmkiefer / Photo ©leewoo_demian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갈구하기에 마련이다. 자유가 무엇이길래.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자유를 갈망할 때는 다름 아니다. 무언가 얽매여 있을 때, 자유의지를 실현하지 못할 때, 수동적인 삶을 살 때,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소망이 그저 풀리지 않는 앙금처럼 가슴속 한구석에 남아있을 때이다. 우리는 갈망한다. 아, 자유여!

자유는 언제나 갈망의 대상이었지, 경험하거나 인식해본 적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유를 갈망한다.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한다고 해치웠지만, 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눈앞에 산적해있다. 물론 이따금씩 이것이 자유가 아닐까 느낄 때가 있다. 비행기 티켓을 살 때,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릴 때. 잠깐, 우리는 그저 소소한 행복을 자유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자유는 언제나 갈망의 대상이었지, 경험하거나 인식해본 적은 없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같다. 티켓을 들고 비행기를 탈라치면 장장 몇 시간에 걸치는 탑승 수속을 밟아야만 한다. 낯선 도시에서는 오감을 열고 그네들의 법칙을 배워야만 한다. 커피는 금방 식어가고,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된다. 이것이 자유였던가. 학창시절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유라는 것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기르고, 마음대로 옷을 입고, 진탕 술을 마셔보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放縱)이었다.

도대체가 자유에 대한 갈망은 가시지를 않고, 충족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자유에 대한 동경(憧憬)은 저 이상적인 낙원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걱정도 근심도 고통도 없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우리의 낙원 말이다. 천국, 유토피아, 엘리시움, 완결된 공산주의 사회. 우리의 자유는 항상 이상향 속에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자유는 이상향 속에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렸고, 우리는 그것을 갈망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했던 것처럼 자유는 언제나 미지의 대상이자 불가촉의 관념일 뿐이었다.


자유는 언제나 미지의 대상이자 불가촉의 관념일 뿐이었다.



저 먼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유. 허나, 인간이 미지의 것을 갈망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맡아보지도 못했던 향기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사실, 우리가 불가촉의 관념인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자유라는 것을 인식했기에 가능한 것이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자유라는 관념이 마치 길들여진 어느 야생 동물의 야생 본능처럼 깊숙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우리는 본능처럼 꿈틀거리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다. 망각하고 있던 본능, 잃어버린 권리로서의 자유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유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유래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자유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의 시민사회를 떠올리곤 한다. 모두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예술과 철학에 종사하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외부세력과 맞서 싸웠던 이상적 도시국가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자유의 기반은 노예제 위에 있었다. 여자와 아이에겐 자유가 없었다. 그리스의 자유는 성인 남성을 위한 시민적 자유였을 뿐이었다. 선택받은 이들만이 자유를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란 말인가. 모두가 자유를 추구하던 시대는 없었단 말인가. 우리 인간에게 자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한 시대가 있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기조(Francois Guizot, 1787-1874)는 자유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는 4~5세기의 유럽 대륙에서 자유의 관념이 태동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당시는 게르만족을 비롯한 여타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 문명이 붕괴하던 시기가 아니던가. 몰락의 시기에 자유라니. 기조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이 아닌 '야만'인의 무리인 이민족에 주목했다. 그들에겐 이렇다 할 국가도, 법도 없었다. 정착하지 않고 늘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다. 역사에서 흔히 ‘게르만족의 대이동(Barbarian Invasions)’이라 불리는 거대한 인구 이동의 조류는 다름아닌 개개인의 원초적인 욕망과 이익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조는 바로 이 야만의 상태를 자유의 맹아로 꼽았다. 야만의 상태만큼 개인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이야말로 근대사회(프랑스 혁명 시기)의 개개인들이 갈망하고 꿈꿔왔던 자유라는 것이었다. 개인의 본연적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독립적 성향과 인간임을 자각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며, 개성의 발견과 그 개인 고유의 성향을 발견하는 전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자유의 기쁨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게르만인들이 로마법을 수용하고 문명화되고 기독교화되면서 이 야만적 자유를 잊었다고 보았다. 야만인은 절대적 자유를 국가(사회)에 반납하고 문명화의 혜택과 ‘예속’을 택한 것이다.

야만의 상태가 바로 자유의 맹야 : 우리가 그리워하는 자유는 야만-비문명, 탈법脫法-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DSC09265.jpg 우리가 갈구하는 자유는 문명 이전의 야만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자유는 야만-비문명, 탈법脫法-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문화 운동을 살펴보면 언제나 범사회적, 범국가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을 띄고 있다. 1960년 중후반, 미국의 젊은이들을 매혹했던 히피 문화가 바로 극명한 예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거부하고, 물질문명을 부정해야 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난해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부터 시작해 정신적 자유를 위한 마약 사용, 나아가 집단 난교와, 사회를 벗어난 공동체 생활을 추구했다. 사회를 벗어나 야만으로 회귀한 것이다.

하지만 히피 문화는 하나의 유행이었지, 새로운 사상의 조류가 되지 못했다. 자유를 찾기 위해 사회의 통념, 질서, 관습, 법, 도덕을 모두 벗어나 야만으로 갔던 그들은 오히려 황폐함을 맛보고 만 것이다. 자유라는 것에 가까워졌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법과 도덕 없는 삶은 사실 공포에 가깝다.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고,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을 수 없다. 자유를 찾고자 했던 이들은 오히려 약육강식의 세계로 회귀한 것이다. 히피를 추구했던 이들은 오늘날 어디 있던가. 다시 예속을 택해 사회로 돌아왔다. 왜? 안전하기 때문에.

일찍이 자유는 야만적임과 동시에 위험하고 고립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이들이 있다. 헤르만 헤세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황야의 이리’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황야에 홀로 있는 늑대처럼 외로이 방황하고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전혀 새로운 인류’가 되려면 사회의 법과 규범, 관습과 도덕의 세계(그에겐 기독교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바리안(barbarian;야만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법도, 도덕도 알지 못하는 야생에서 살았던 본능에 충실한 야만인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바바리안적인 삶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청사진을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인간, ‘초인’의 사상적 기반인 것이다.

자유는 야만적임과 동시에 위험하고 고립적인 것이다 ; 일체의 예속, 즉 사회의 법과 규범, 관습과 도덕을 탈피해야 하므로.



DSC01968.jpg Spirit of the night, Sir Alfred Drury, 1905 / Photo ©leewoo_demian



프랑스 혁명, 히피, 황야의 이리, 바바리안, 초인. 이것은 모두 우리가 그리워했던 본능, 자유에 대한 초상이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자유라는 것은 가까워질수록 삶의 안정과 안락, 그리고 행복이 부재해있다. 완전한 자유에는 불안정과 그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불안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상가 홉스와 루소는 인간의 자연권인 자유는 만인의 욕망이 상충되기 때문에 불화와 투쟁, 그리고 전쟁만을 야기한다고 보았고, 이를 극복하기 인간은 자유를 사회와 국가에 반납하고 예속 상태에 머무르길 ‘계약’했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홉스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골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의 국가, 하나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유에 결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속을 선택한 대가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를 그리워한다. '사회계약' 이전에 세상에 양도했던 자유를 말이다. 허나 그 누구도 사실 사회계약에 서명을 한 적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니 한 사회의 일원이었고, 한 국가의 국민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그것으로 사회계약은 성립된 것이다. 사회계약은 우리의 DNA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일종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인 셈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계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은, 가슴속에 본능처럼 꿈틀거리는 야만에의 본능 때문인 것이다. 오늘도 예속된 상태에서 국가의 일원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당신, 당신도 무법천지를 방황하던 야만에의 향수를 느끼는가?

우리가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은, 가슴속에 본능처럼 꿈틀거리는 야만에의 본능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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