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아, 그리고 민족주의적 모순

by 이진영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한민족을 강조해왔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뿌리 깊은 차별은, 타민족의 피가 섞인 혼혈아를 타자화했다. 이로써 우리는 오랜 시간 혼혈아를 우리와 다른 인간으로 분리했다. 그러나 최근, 혼혈아 사이에서도 차별받지 않는 집단과 여전히 차별받는 집단이 나뉘기 시작했다. 바로 백인 혼혈아와 그 외 유색인종 혼혈아다. 그렇다면 혼혈아라는 같은 선상에 위치한 두 집단이, 각각 칭송받고 차별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따라서 오늘 말할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혼혈아 차별 역사 알아보기, 최근 인종 간 차별 정도가 달리 나타나는 이유 살펴보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제시하기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한국 사회 혼혈아 차별의 역사다. 혼혈아 차별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병자호란 직후 환향녀(還鄕女)를 설명해야 한다. 이들은 소위 화냥년이라고 불리며 ‘오랑캐의 성(性) 노리개 노릇을 해 몸을 더럽힌 계집’으로 치부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군 위안부(양공주)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이들은 사회가 묵인한 강간 속에서 원치 않는 혼혈아를 낳았고, 아이와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혼혈아에 대한 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미군 아버지를 둔 혼혈아를 보고 ‘튀기’라 칭하며 못마땅해한다. 튀기란 서로 다른 두 종에서 태어난 새끼로, 혼혈아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했던 용어다. <검정 고무신>과 비슷한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도 차별의 상처를 고백한다. 가수 인순이는 과거, 흑인 혼혈 특유의 곱슬머리 때문에 방송 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차별받아야만 했을까. 그 답은 시대 현실에 있다. 이들이 차별받았던 시기는 병자호란과 6.25 등 전쟁 직후 복원 시기다. 이렇듯 혼란한 시기에는 국민 정서가 어수선했을 것이고, 이럴 때일수록 만인의 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대상에게 칼을 꽂는 동안 집단에는 결속력이 생길 것이고, 그래야만 급속한 전후 회복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혈아와 그 어머니가 시대의 희생양으로 이용된 셈이다.


두 번째는 인종에 따라 차별 정도가 달리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문화 사대주의에 의한 무의식적 서열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일 민족, 한민족을 주장하며 혼혈아들을 배척해왔다. 그러나 최근 경향을 보면, 이 엄격한 규칙은 백인계 혼혈아에게만큼은 예외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제 매체는 백인 혼혈아들의 천국이 됐다. 성인들은 유명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아이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육아 방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검색 엔진에 ‘혼혈 연예인’이라고 검색하니 다니엘 헤니, 데이비스 맥기니스, 리키 김, 버논, 이유진, 이현재, 전소미, 줄리엔 강 등 백인계 혼혈인들의 프로필이 쏟아졌다. 반면 유색인종 혼혈 연예인은 도끼, 윤미래, 인순이, 한현민 등 4명에 불과했다. 육아 프로그램에서 상위권 인기를 차지하는 인물 또한 축구선수 박주호와 방송인 샘 해밍턴의 자녀들이었다. 이들 역시 백인계 혼혈아였다. 이처럼 인기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는 동남아시아계 혼혈이나 흑인계 혼혈 아이들은 한 명도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


유색인종 혼혈아의 비중이 작아서 매체에 등장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들이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은 백인 중심의 미적 관념을 가진 우리나라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흑인 민권 운동 당시, 일부 흑인은 백인의 심미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외모를 비하했다. 그러한 생각은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문화 사대주의를 바탕으로, 유럽과 영미 국민들의 외모를 동경한다. 자연스레 우리보다 못 사는 제삼세계 국민들의 외모는 닮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열화가 이뤄지고, 혼혈아 인식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혼혈아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는, 이제 문화 사대주의까지 작동해 심각한 문제가 됐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백인계든, 동남아계든, 아프리카계든 인종에 상관없이 같은 대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실상 세계화 시대에, 경계를 나누고 피를 구분하는 구시대적 사고는 의미 없다. 우리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만 흐르지는 않을 것이며, 이름 모를 모 부족이 우리의 조상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혼혈아’가 아니라 ‘국민’으로 봐야 한다. 생김새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결국 이들은 한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살기로 한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문화에 정착하려는 힘든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 차별이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죽이고 폭력을 행사해야만 차별인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미리 이들을 분리하고, 몰래 서열화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속으로는 차별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분리 평등주의의 재현이며 기만이다, 이들에게는 칭송도, 차별도 필요 없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 대해 주는 태도가 절실할 뿐이다.


2020.12.04, 스물셋의 이진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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