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라이브, 평론가와 리스너가 주목하는 밴드
락 덕후는 매년 여름마다 락 페스티벌을 기다리며 산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작년에 친구와 함께 생수병만 들고 한강 난지공원에 갔었던 기억이 퍽 좋았던지라, 올해 여름은 락 스피릿으로 셔츠를 온통 적시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물론 금전 이슈와 체력 이슈로 셔츠 소매만 조금 적셨다. 락 페스티벌 중에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인천 펜타포트에만 다녀온 것이다. 대신 좋은 밴드들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올라오는 걸 보며 입맛만 다시다 보면 유명한 밴드들이 자연스레 눈에 익기 마련이다.
그중 눈에 띄는 밴드는 단연 실리카겔이었다.
실리카겔은 김건재(드럼), 김춘추(기타, 보컬), 김한주(건반, 보컬), 최웅희(베이스) 4인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사이키델릭 록과 모던 록을 주 장르로 하는 이 밴드는 2015년에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앨범으로 데뷔하였다.
사실상 앨범 제목에서부터 주된 장르가 보이는 듯하다.
'사이키델릭'이라는 용어는 환각제를 뜻하는 단어 'Psychedelic drug'에서 유래했다. 제목부터 아리송한 느낌인 데뷔앨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작업물들까지. 실리카겔의 음악 역시 마치 환각제를 복용했을 때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아래로 실리카겔의 유명한 두 곡을 추천하고자 한다.
재생 바를 누르자마자 중동 사막 지역의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맞은편에서는 보컬인 김한주가 남자 히잡을 펄럭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옆에는 지친 듯한 낙타도 함께 서 있다.
Desert Eagle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노래 가사에 나오는데, 바로 '유아독존'이다. 광기 어린 분위기로 '섬광'을 몇 번이고 되뇌인 뒤 이어지는 김춘추의 기타 솔로는 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개종하여 석가모니를 모시고 싶어진다.
그렇게 무아지경이 되어서 고개를 흔들다 보면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기계와 친구가 되는 공장에서
신비한 힘을 느끼고
이 사막에서 꼭 살아남자
오 음악 없는 나라로
죽은 분들의 세계로
기계와 친구가 되는 공장. 언제부터인가 휴대폰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이 친구를 잘 사귀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쁜 친구를 너무 깊게 사귄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신호등을 건너는 도중에도 핸드폰을 보고 있을 정도이니까.
작사를 한 실리카겔에게 음악이 없는 나라는 곧 죽은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닐까?
음악이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고 기계와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질 땐 Desert Eagle을 들어 보자.
실리카겔의 음악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말자. 조금은 난해한 가사가 이어지더라도 신이 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까딱이다 보면 무언가 알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NO PAIN에서 죽음에 대한 사유가 느껴지는 것은 혼자의 착각이 아닌듯하다. 작사가가 순수하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는 감상과, 장례식에서 해당 곡을 틀고 싶다는 댓글은 맥락을 같이한다.
난 오늘 떠날 거라 생각을 했어
날 미워하지 마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죽음이 묻어있는 곡에서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꿈이 있기에 실패를 하고, 사랑을 하기에 상처를 받는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가치 있다.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Desert Eagle에 이어서 나오는 '음악 없는 세상'은 고통조차 없는 '무'의 세상이 분명한 듯하다.
글을 작성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실리카겔의 음악은 다정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곡을 만든 이들의 목적이든 아니든 간에, 실리카겔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을 증명한다.
이제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서 실리카겔의 다정함을 눈이 아닌 귀로 느껴보자. 무아지경 속의 안락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들의 음악이 마음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