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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Jul 25. 2023

나의 불행 속으로 들이닥치는 너를 허락하기

정국의 <Seven (feat. Latto)>

MONDAY. 레스토랑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샹들리에를 박살 낸다.

TUESDAY. 지하철 창문에 매달린 남자를 발견한 여자가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다.

WEDNESDAY. 침수된 세탁소에서 서로 물을 튀겨댄다.

THURSDAY. 물을 많이 먹은 남자가 결국 응급실 베드에 실려 간다.

FRIDAY. 태풍 속에서 전봇대를 붙잡고 구애하던 남자가 비닐봉지처럼 날아가 버린다.

SATURDAY. 남자의 장례식에 참여한 여자. 관뚜껑을 연 남자가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부르는 걸 보고 질려한다.

SUNDAY. 옥상까지 따라 올라온 남자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일주일에 7일, 매시간 매분 매초

그렇게 밤이면 밤마다 널 사랑해 줄 거야


비가 그친 후, 여전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여자는 슬며시 손을 내민다. 둘은 손을 잡고 번개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처음엔 그저 웃겼다. 훌쩍거리는 사람들의 앞에서 관을 열고 천연덕스럽게 허밍하는 정국과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젖히는 한소희. 뮤직비디오는 3분 46초 동안 장난스럽고 감미롭게 흘러간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너를 사랑하겠다는 뻔한 구애인 줄로만 알았다.





놀리듯이 머릿속을 맴도는 전 남자친구


하지만 며칠 뒤 다시 재생한 뮤직비디오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거 전 남자친구 아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조금 소리를 높였다고 샹들리에가 깨지고, 지하철 위를 스파이더맨처럼 걸어 다니고, 태풍 속에서 전봇대를 잡고 사랑을 고백하고. 이렇게 비현실적인 상황이 가능한 장소는 하나뿐이다.


바로 '꿈'이다. 그리고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이별한 여자의 혼란스러운 정신 속을 표현한 뮤직비디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애인의 연락처를 전부 차단하고 욕을 퍼붓다가도 새벽이 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라면 해당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내내 한소희는 정국을 피해 다닌다. 화를 내고, 어깨를 밀치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걸 봐도 무시한다. 마치 전 애인에 대한 잡생각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에 X와 관련된 실수담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 새벽 두 시쯤 충동적으로 보낸 '뭐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숫자 1). 무의식은 통제하기 쉽지 않다.



겨우 잊었다고 생각하고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정국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부활한다. 아무래도 전 남자친구에 대한 상념을 지우기가 힘든 모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불행 속으로 뛰어드는 남자 


그렇게 뮤직비디오가 귀엽다고 생각하던 중에, 인터넷에서 전혀 다른 여론을 발견했다. 여자가 남자를 밀어내는 이유가 자신의 '불행' 때문이라는 것이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정국은 고작 꽃다발 하나를 사기 위해 돈다발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화를 내는 한소희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세레나데를 부른다.


반면 한소희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항상 굳어있는 표정은 그녀의 상황과 관련된 듯하다. 가는 곳마다 땅이 흔들리고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세탁소에서 빨래하는 간단한 일상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배경으로 덤덤하게 걸어 나간다.


이러한 설정을 인식한 뒤 뮤비를 재생하면 첫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마치 누나가 남동생을 혼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댓글이 있었다. 처음엔 웃어넘겼던 내용이 묘하게 다가왔다.


화를 내다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감싸는 여자와 뭐가 문제냐는 듯 이마를 짚는 남자. 심적인 여유가 없는 상대를 무작정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가 혼나는 상황이라면 이해가 된다.


서로의 간극이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둘은 마치 맞지 않는 퍼즐처럼 보인다.


하지만 Seven의 정국은 그사이를 다듬고 또 메운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한소희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항의하면서도 물이 차오르는 세탁소에서 도망치진 않는다. 멀쩡히 걸어 나가는 한소희와는 달리 응급실 베드에 실려 나가더라도.


덩그러니 놓인 세탁기에 기대서 태풍을 버티는 한소희를 따라 전봇대를 붙잡는다. 익숙한 상황인 듯 안정적인 한소희의 옆에서 혼자 날아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무작정 자신의 세상(레스토랑)으로 이끌던 남자는, 이제 그녀가 있는 세상(세탁소, 거리) 속으로 뛰어들기를 택한다.


네가 가진 불행마저 감수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결국 한소희는 정국을 향해 손을 내민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맑은 하늘을 향해 도망치는 대신 폭풍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간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든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 다시 비 맞은 생쥐 꼴이 될지 모른다. 물을 흠뻑 먹고 무거워진 옷을 비틀며 덜덜 떨게 될 수도 있다

 아마 차갑게 축 늘어진 머리에서 물기를 털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고난 끝에 맞닿은 체온만큼은 쉽게 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Weight of the world on your shoulders

어깨 위에 온 세상을 짊어진 너

All of me I'm offering

내 전부를 너에게 바쳐

Show you What devotion is

헌신이란 게 뭔지 보여줄게



*이미지 출처: HYBE LABELS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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