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연

일상으로부터의 작은 일탈

[공연] SOUNDBERRY FESTA' 25 Review

by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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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방방 뛰거나 소리 지를 만한 일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꺄르르 웃었지만, 지금은 환경미화원분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할 뿐이다. 요즘 그런 생각도 한다. 이제 내가 환희에 차려면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프로포즈를 받거나, 기적적으로 로또에 당첨되거나, 주택 청약에 당첨되는 정도는 되어야겠구나.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다들 지성이 있는 좀비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자의 삶을 이어가며 일상의 행복들을 즐기고 계시겠지만, 그저 약냉방 칸에서 마주했을 뿐인 내가 그들의 미소를 볼 일은 없다. 그래서 내 옆에 앉은 아저씨가 집에 가자마자 모종의 일로 소리 지르고 기뻐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페스티벌'은 현대인들의 도파민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의 땀 냄새와 열기가 가득 찬 공연장에서는 냉혈한이라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고조되곤 한다. 물론 음악에 관심이 있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다행히도 나는 지소쿠리 클럽을 좋아하고 오월오일의 노래를 듣는 선택받은 존재였기에 7월 20일에 일산 킨텍스로 향했다. 같은 취향을 가진 여동생을 끌고.




노는 것도 최선을 다해서


대충 이름만 알아서 기대하지 않았던 '캔트비블루'의 노래가 좋아서 감탄했고, '드래곤포니'의 보컬이 너무 잘생겨서 넋을 놓았다. 물론 음악도 좋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이를 검색해 보니 02년생이길래 앞으로도 그들의 음악성만을 사랑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곡이 많아서 라이브를 가장 기대했던 '지소쿠리클럽'은 실망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이후로도 동생과 뒤에서 맥주나 마시자며 돌아가다가 '최예나'의 얼굴을 보고 홀린 듯이 무대 앞으로 갔다. '이무진'은 아는 곡이 많아서 신이 났고, 학벌주의가 있는 나는 역시 서울예대 출신이라며 연신 감탄했다. 그렇게 하현상, 엔플라잉, 루시와 같은 가수들의 무대를 다채롭게 즐겼다. 모든 밴드와 가수들의 무대가 즐거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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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최선을 다해서 즐기세요.
다들 주중에 일 열심히 하셨잖아요.
그것처럼 노는 것도 최선을 다해서 노셔야 돼요.


꽃나무를 사랑한다는 가사도, 쓰러진 관객을 연신 걱정하는 멤버도,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들도 전부 좋았다. 버스나 침대에서만 듣던 노래들을 직접 듣자 벅차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오월오일'은 완벽히 무대 체질이었다. 탄탄한 실력과 호응 유도에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마지막 곡을 하기 전에 들려준 멘트였다. 평소에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노는 것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듣고 조금 멍했다.


킨텍스 전시장에 들어선 이래로 처음 양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더 규모가 큰 펜타포트에 가서도 그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것을 더 좋아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뛰어놀았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고, 아이같이 굴어도 부끄럽지 않았고, 그리고 힘들었다. 1절이 끝나고 바로 지쳐서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앞으로도 류지호 씨가 격려한 만큼 열심히 놀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즐기라는 말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동생과의 추억 쌓기


동생과 취향이 같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페스티벌을 함께 찾은 적은 없다. 나는 20대 초반에 혼자서 열심히 공연을 다니다가 요즘 흥이 식은 상태였고, 동생은 작년쯤부터 밴드에 빠져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잔디밭을 굴러다녔다. 그러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티켓이 두 장 생겨서 누구와 갈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리니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킨텍스까지 갔다 오는 데는 왕복 6시간이 걸린다. 즐거운 순간을 공유하고 같은 집으로 돌아와서 둘 다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동생이 퉁퉁 부은 눈으로 찾아왔다. 뭐하냐는 듯이 바라보자 대뜸 휴대폰을 눈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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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봤던 공연의 플레이리스트였다.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커버 사진이 지쳐서 앉아 있다가 몇 번 찰칵거린 뒤 전형적인 인디밴드 앨범 커버 같다며 깔깔거리던 그것이었다. 둘 다 눈도 뜨지 못한 채로 한참을 웃다가 그날 저녁에 바로 코인 노래방을 찾았다. 스탠딩 마이크로 하현상이나 엔플라잉의 노래를 마구 부르다가 목이 다 쉬어서 빠져나왔다. 서로 득음을 한 것 같다며 칭찬하다가도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음치 자매로 한번 나가볼까 고민을 했다.


*


지금의 리뷰글도 위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작성하고 있다. 도파민이 최대치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오니 여운이 남는다.


페스티벌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빠져나와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는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술, 담배, 릴스와는 다르게 즐기고 나서 찝찝함보다는 충만함만이 남으니 무엇보다 건강한 수단이다. 혈중 건강 도파민 농도가 낮은 현대인들에게 소리 지르며 뛰어놀 수 있는 페스티벌을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그리하여. 독서실과 학교를 반복하며 지친 수험생들, 매일같이 전혀 새롭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며 지친 직장인들, 취업 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백수들. 언젠가 지하철에서 잠깐이라도 스쳐 지났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내년 SOUNDBERRY FESTA' 26에서 봐요!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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