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 Review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뻔한 질문이다. 소개팅 자리에서나 직장 동료와의 스몰토크에서 꺼내기 만만한 주제다. 그리고 대답에 따라 반응의 종류가 다른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PC방 가서 짜파구리 먹으면서 롤토체스 해요" 한다면 적당히 공감해주고 말겠지만, "저는... 주말마다 예술의전당에 가서 클래식을 듣곤 해요"하고 대답하면 "오"나 "와"같은 감탄사가 앞설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 치켜세워주는 취미들이 분명 정해져 있다고 느낀다. 보통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그렇다. 이와 같은 베이스를 깔고 나서, 드는 비용이 높거나, 진입장벽이 있거나, 공부가 필요하다는 조건이 추가되면 일반적인 취미들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했던 클래식 공연이나 무용,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괜히 있어 보인다고 느껴졌다.
사실 처음에는 그래서 듣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재즈 다이닝」이나 「비가 내리는 날에 미술관에서... 재즈」 같은 플레이리스트들이 올라오는데 멋있어 보여서 눌렀다. 그렇게 듣다 보니까 좋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의문이 존재했다. '지금 내가 재즈 자체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젠체하고 싶은 건가?'
저는 재즈를 사랑해요. 하기에는 아는 사람도 쳇베이커나 빌 에반스밖에 없어서 더더욱 말을 사리게 됐다. 하지만 호감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됐었기에 9월의 어느 주말에 돗자리를 들고 서울숲으로 갔다. 잔디밭에서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적당히 많다는 사실에 굉장한 놀라움과 만족감을 느꼈다. 그동안은 주로 락페스티벌에 다녔었는데, 매번, 여지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 틈에서 현기증이 났었다. 한여름에 락페 한번 갔다 오면 그해 사람구경은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스탠딩존에서 말린 멸치마냥 쪼그라들어서 팔을 흔드는 것도 재미는 있다만 5분 만에 기력이 다하곤 했다. 결국 지쳐서 돗자리로 돌아가 김말국이라도 먹으려 하면 대기 시간이 기본 30분이었다.
그런데 재즈페스티벌은 스탠딩존 자체가 없었다. 다들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양산이나 돌리고 있었다. 타임테이블을 따라 이 무대 저 무대로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앞에서 무대를 준비하느라 아무 음악이 들려오지 않아도 자리를 지켰다. 그냥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 같았다.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지인과 간간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화하거나, 조용히 책을 읽고는 했다. 돗자리에서 강아지와 과일을 나눠 먹는 사람들도 보였다.
일단 가방에 구겨 넣기는 했지만 정말 펼쳐볼 생각은 없었던 에세이를 꺼내서 읽었다. 야외에서 그 정도로 집중해서 책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기는 했지만 맑은 공기나 적당한 웃음소리들이 더위를 상쇄시켰다. 가끔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겹지 않은 기다림이 끝나고, 무대가 본격적으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인 '리 샤오촨(LI†XIAOCHUAN)'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다. 도착해서 처음으로 보는 공연이었다. 잔디밭에 울려 퍼지는 느릿하고 낭만적인 선율은 서울숲을 향하는 기차를 타던 그 순간부터 줄곧 가졌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었다. 책을 덮어버리고 오감 중에서 청각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가사가 하나도 없는데도 너무 즐거워서, 장난스러운 트럼펫 소리를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락페스티벌도 여전히 사랑한다. 정말이다. 하지만 재즈페스티벌만의 여유로움이 충격적으로 좋았어서 내년의 여름 계획에 변동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자금이슈가 있다면 펜타포트가 열리는 송도달빛공원보다는 서울숲 쪽으로 더 발길이 향할 것 같다.
오후 4시 30분이 되자마자 짐을 전부 내버려두고 벌떡 일어나서 '가든 시어터' 무대로 향했다. '밀레나(MILENA)'가 공연할 차례였다. 그녀는 재즈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며 R&B와 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싱어송라이터다. 일상의 감정과 순간들을 낮고 세련된 목소리로 섬세하게 담아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정확히 이틀 전, 누가 오는지 대충 예습이나 할 생각으로 음악을 틀었다가 순식간에 반했었다. 밀레나의 「why do we fall in love?」는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듣고 있다. 알게 된 시간과는 상관없이 무척이나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였고, 그날 가장 설레하며 기다렸던 무대였다. 가수가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자마자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무대에서 바라보는 여러분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정확히 '예쁘다'고 했는지 '아름다웠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짓던 얼굴만은 기억난다. 기분에는 전염성이 있어서 순식간에 행복이 옮았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되고, 나는 아무래도 재즈를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늘어지는 나무 그늘 안에 들어가서 음악을 감상하다가 주변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네다섯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매가 땅바닥의 개미를 구경하며 꺄르르 웃었다. 조그만 개미가 손을 타고 올라오자 흥분하며 일어나서 엄마에게 뭐라고 떠들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반대편의 관객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낯설다는 감각이 앞서서 가만히 바라보며 이유를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질감이 쾌감으로 바뀌었다.
아무도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았다. 작은 액정 속에서 조그맣게 움직이는 가수를 보는 대신, 바로 앞에서 시선을 맞추고 손을 흔드는 가수를 눈에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치켜들지 않고 따스한 햇살이나 공기 같은 것들에 더 집중했다.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도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어제와 오늘의 하늘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것은 나의 마음가짐뿐이고, 어제는 올려다보지도 않았던 하늘이 오늘은 유달리 소중하게 다가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당연시 여기던 것들에 집중하자 가치가 함께 보였다.
평범한 일상을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도와준 밀레나와 함께 무대했던 로다이브(LODIVE), 그리고 현장의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여름이라 답한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라서 그렇다. 초록으로 피어난 녹음 속에서 생명력을 얻고 또 내일을 살아간다. 끈적한 땀이나 날벌레들까지 좋아하진 못하지만, 여름이 주는 충만감이 계절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서울숲에서의 9월 21일이 저물어 갈수록 조금 속상했다. 해가 지자마자 맨 팔이 싸늘해져서 연신 문지른다는 사실은 곧 여름의 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카 재즈 유닛'의 음악을 들으며 몸을 마구 흔들다가 '이소라'가 나오자마자 잔디밭에 얌전히 앉았는데, 공기가 차갑고 습해서 일련의 생각을 했다.
가을을 온전히 반기지 못하고 서운해한다는 것은 여름을 사랑한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날 밤이 찾아오자마자 센치해졌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서울숲에서의 재즈페스티벌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막차 시간 때문에 앞서서 돗자리를 접는 손짓이 느릿느릿했다. '처음 느낌 그대로 사랑한다'며 고백하는 이소라를 두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행복했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는 점이 아쉬워서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재즈를 사랑하는 것 같다. 「2025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을 다녀온 뒤로 확신이 든다. 음악을 들으며 행복했고 지나는 순간들을 잡으려 애썼는데 다른 복잡한 생각들이 뭐가 중요할까. 쓸데없는 고민에 빠졌던 과거의 나에게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부터 누군가 재즈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저는 재즈를 사랑해요. 여름이나 침대만큼요."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