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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15. 2021

90~180일: 남겨진 자들의 일상은 계속된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다

같은 시기에 같은 조건으로 입사했지만,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해고 대상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고용을 보장받은 상황.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여행업계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막상 내 이야기가 되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간신히 비껴간 나 역시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데, 해고된 당사자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통보 직전까지만 해도 함께 의지하며 일하던 동기들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는 사실도 무척 가슴 아팠다. 일본에서 처음 가져본 30여 명의 입사 동기였다. 연령대도 가치관도 천차만별이었지만, 몇 달 동안 같이 고객 문의를 해결하는 사이에 전우애와 비슷한 끈끈한 연대감이 피어났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구처럼 지내는 일본인 동료도 생겼다. 그러나 구조조정 이후 각자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이들과의 관계도 때 이른 종착점에 이르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고객의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버려진 자'들은 회사 측과 몇 차례에 면담을 가졌다. 면담이라고는 해도, 해고 통지서에 사인을 받아내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다. 참가자들이 들려준 면담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통보 방식과 불투명한 기준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회사는 결정을 번복할 리 없었고, 한때 동료라 불리던 수많은 이들은 그렇게 타인이 되어 회사를, 그리고 내 삶의 반경을 떠나갔다.


해고 명단에 없던 직원 중에서도 이 시기에 사라진 이가 적지 않다. 아마 진작부터 이직을 준비했거나, 당분간 월급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나 역시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곤 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퇴사할 경우 위로금이 나오지 않는 데다, 바로 재취업할 자신도 없었기에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 떠밀려 매일의 업무를 반복하는 사이, 6개월의 수습 기간이 만료되고 정직원이 되었다. 허울뿐인 정직원임을 알기에 별 감흥은 없었지만, 그 사이 동료들의 빈자리에도, 어색하기만 했던 재택근무에도 점차 적응이 됐다. 요즘 대부분의 콜센터는 유선 전화기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업무를 본다. 따라서 노트북과 헤드셋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업무가 가능하다(물론 고객의 개인 정보를 다루므로, 공공장소에서 일하는 것은 곤란하다).


재택근무는 업무와 사생활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아침마다 반복하던 겉치레에서 해방되는 달콤함이 훨씬 컸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니 화장품이 잘 떨어지지 않고, 빨랫감도 확연히 줄었다. 또 통근 시간이 사라지니, 하루가 부쩍 여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에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직접 밥을 만들어 먹는 호사도 당연해졌다. 느슨해진 하루의 틈을 동네를 산책하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며 채워나갔다.


2020년 6월 1일. 1차 긴급 사태 선언이 해제되었지만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여행업계는 여전히 불황이었다. 인력이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업무량은 거의 늘지 않아, 직원들 사이에서 두 번째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러던 7월 중순, 여행사에게는 호재였고, 코로나19 방역에 있어서는 최악의 한 수로 작용한 일본 정부의 '고투트래블(Go TO Travel)'캠페인이 불안한 막을 올렸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大変ご迷惑をおかけいたしました。
(타이헨 고메이와쿠 오카케 이타시마시타)

큰 폐를 끼쳐드렸습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Tomasz Gawłows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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